오늘은 2019년 2월 4일 설날이다.
그리고 공휴일이다.
우리는 일 년에 두 번의 새해 첫날을 맞이한다.
하루는 양력 1월 1일이고, 다른 하루는 음력 1월 1일인 설날이다.
매년 맞이하는 음력 설날은 나에게 두 번째 기회다.
가만히 눈을 감으니 설날이 나에게 묻는다.
"양력 1월 1일은 당신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그날은 당신의 과거를 유기하고 새로운 당신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희망이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 전혀 변할 가능성이 없는 당신을 위해 두 번째 기회를 선물하고 싶다.
2월 4일, 음력 설날이 진짜 시작이다.
당신은 이제 밤하늘의 달처럼 의연하게 혁신하겠는가?
오늘이 설날인 이유는 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止], 나의 미래를 위한 한 가지 원칙[一]으로 새로운 시작을 경주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새해 첫날, 내 삶을 위해 선택해야 할 한 가지 원칙은 무엇인가?
내가 탄 나룻배는 작은 외부 충격에도 출렁거린다.
수상스키어들이 만들어낸 잔잔한 파도에서 이 작은 배는 어쩔 줄 모른다.
그러나 함선은 언덕만 한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고 견디어 자신이 가야 할 항로를 유연하고 거침없이 항해한다.
왜 함선은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을까?
함선이 나룻배보다 커서일까?
그 이유는 크기가 아니라 함선이 장착한 특별한 장치 때문이다.
바로 '안정장치(安定裝置)'다.
이 장치는 자동차와 비행기에도 장착되어 안정된 운행을 보장한다.
인생이라는 항해에는 화창한 날도 있고, 궂은 날도 있다.
인생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 폭풍우는 인간의 인종, 학력, 성별, 빈부, 지위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엄습한다.
어떤 인간도 인생의 항해에서 맞닥뜨리는 폭풍우를 근사하고 우아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을 지니고 태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그런 위기에 대한 반응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런 반응은 어디서 배워야 할까?
그런 멘토는 어디에 존재할까?
철학자나 종교 지도자들을 찾기라도 해야 할까?
기원후 2세기, 소아시아에서 태어난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일상에서의 사건들을 '판타지아(phantasia)'라고 명명한다.
판타지아는 우리의 감정을 현혹시키는 허상들이다.
인간은 대개 판타지아와 마주치면 당황해 어쩔 줄을 모른다.
우리 대부분은 이 판타지아에 무의식적으로 매료되어 헤어 나오지 못한다.
에픽테토스는 인간의 운명은 판타지아와 마주쳐 그것에 동의할 것인가
혹은 무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마음, 즉 의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에펙테토스는 '의지'를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처음 사용한 그리스 단어 '프로하이레시스prohairesis)'라고 명명한다.
그는 『참회록』(1.18.21)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가 난공불락인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것에 방해받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설날은 또 다른 시작이다.
나는 앞으로 불가피하게 몰려올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파도와 판타지아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나는 인생이라는 항해를 위해 나만의 안정장치를 장착했는가?
나는 주변의 판타지아와 상관없는 난공불락의 의지, 즉 나만의 프로하이레시스를 내 마음속에 장착하고 있는가?
pp.157~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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