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지향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계boundary'의 개념을 배워야 한다.

경계는 구분과 한계를 뜻한다.

내 것과 네 것을 분류하는 기준이 되고 내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네 권한은 어디를 넘어올 수 없는지 결정한다.

 

관계에서는 '양팔 벌리기' 정도의 거리감이 필요하다.

회사 동료, 지인뿐만 아니라 친구, 가족과도 마찬가지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두 팔을 옆으로 뻗어보자.

그리고 힘껏 휘둘러보자.

아무것에도 부딪히지 않을 물리적 공간이 있어야 몸을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마음도 똑같다.

사람은 마음의 팔을 360도 막힘없이 휘돌릴 수 있는 정도의 심리적 영역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그 영역에서 온전히 자기다워진다.

그곳은 자유로운 독립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의 공간이자, 안정감을 보장받는 장소이다.

외부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해 도망갈 수 있는 도피처이고, 휴식과 충전을 통한 자기 회복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우리 내면은 단단하게 자란다.

 

또한 적절한 거리감은 혼자 있고 싶은 욕구와 타인과의 친밀감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충족해준다.

사적인 경계가 존중되는 관계에서는 함부로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교집합 영역에서 만나 함께 기쁨을 누릴 줄 안다.

어떤 이유로 인해 너무 가까워지거나 너무 멀어지더라도 고무줄처럼 탄성력이 좋아서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그러나 타인지향 시나리오를 가진 사람들은 그 같은 경계를 배운 적이 없거나 포기해버린 경우가 많다.

상대와 거리를 둘 때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 상대에게서 물러나려고 하면 감당하기 힘든 질타를 받아왔기에 그렇다.

거리 감각을 잃어버린 나머지, 이상의 반경에서 너무 많은 사람과 부딪치며 치인다.

 

누군가 "우리끼리 왜 그래?" 하면서 최소한의 거리를 무시하고 슬쩍 들어올 때도 둔감하다.

바람직한 기준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항상 왜곡된 지점에서 관계를 시작하고 지속한다.

결과적으로 부당한 감정과 부담을 떠맡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나의 감정과 욕구를 무시했다면, 상의도 동의도 없이 나에 관한 결정권을 대행하려 했다면, 나의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제 것처럼 이용했다면, 경계 위반이다.

내부지향 시나리오도 경계 설정을 바로잡을 때 만들어진다.

 

우리에게 경계 너머의 일에 대해 등을 돌릴 권리, 내가 원하지 않는 제안을 사양할 권리가 있다.

동시에 자발적으로 경계를 넘어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최종 결재권은 나에게 있어야 한다.

 

pp.155~15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