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카의 행복론 - 인생이 왜 짧은가
자네가 인생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개인적인 사정이나 공적인 사정으로 풀 수도 끊을 수도 없는 올가미에 걸려들었다고 가정해보세. 올가미에 걸린 사람은 처음에는 거추장스런 올가미를 간신히 견디지만 일단 그것을 화내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나면, 필연은 용감하게 견디는 법을 가르치고 습관은 쉬이 견디는 법을 가르친다는 점을 명심하게나. 자네는 인생의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움과 휴식과 쾌락을 발견하게 될 것이네.
자네가 불쾌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말일세.
자연은 우리가 고난을 당하도록 태어난 줄 알고는 불쾌한 일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습관을 만들어내어 가장 어려운 일에도 금새 친숙해지도록 만들었네.
그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베푼 가장 큰 호의라고 할 수 있네.
불행이 처음 우리를 가격했을 때와 같은 기세를 계속 유지한다면 견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네.
 

우리는 모두 운명에 매여 있네. 어떤 사람은 느슨한 황금 사슬로, 어떤 사람은 저급한 금속으로 만든 팽팽한 사슬로.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똑같이 포로이며, 묶은 자도 묶여 있기는 마찬가지네.
왼손의 사슬을 더 가볍다고 여기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다.
어떤 사람은 높은 관직에 묶여 있고, 어떤 사람은 부에 묶여 있고, 어떤 사람은 고귀한 가문으로 고통 받고, 어떤 사람은 비천한 출신으로 고통 받는다네.
어떤 사람은 이방인의 지배에 머리를 숙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지배에 머리를 숙인다네.
어떤 사람은 추방되어 한곳에 붙들려 있고, 어떤 사람은 사제가 되어 한곳에 붙들려 있다네.
인생은 모두 종살이일세.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처지에 친숙해지고, 되도록이면 불평을 적게 하고, 거기에 유리한 점이 있으면 무엇이든 꼭 붙잡아야 하네.
담담한 마음으로 위안을 찾지 못할 만큼 괴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네.
작은 땅도 기술적으로 나누면 여러 가지 용도로 쓸 수 있고, 좁디좁은 공간도 잘 배열하면 사람이 살 수 있을 때가 비일비재하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이성을 사용하게.
그러면 딱딱한 것이 부드러워지고, 좁은 것이 넓어지고, 무거운 것이 그것을 질 줄 아는 사람을 덜 누를 것이네.
 

그리고 욕망은 멀리 쏘다니게 할 것이 아니라 가까이서 돌아다니게 해야 할 것이네.
욕망을 완전히 가둘 수는 없으니까.
이룰 수 없거나 이루기 어려운 것들은 내버려두고 가까이 있거나 이루어질 성싶은 것들을 따라 다니되, 모든 것은 똑같이 하찮고 겉보기만 다를 뿐 속으로는 똑같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네.
우리는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시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네.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낭떠러지일 수도 있으니까.
 

한편 적대적인 운명이 어정쩡한 위치에 갖다놓은 자들은 원래 교만해질 수 있는 처지에서 교만을 끌어내리고 되도록 자신들의 행운을 평균 수준에 맞춘다면 더 안전할 것이네.
사실 떨어지지 않고는 내려올 수 없는 높은 곳에 어쩔 수 없이 버티고 있어야 하는 사람도 많다네.
하지만 그들도 자신들의 가장 큰 짐은 자신들이 어떨 수 없이 남에게 짐이 되어야 하고, 높은 자리로 들어올려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 못 박혀 있는 것임을 증언해야 한다는 것이네.
그들은 정의와 온유함과 인간성과 선심을 쓰는 선의의 손으로 유리한 미래를 위하여 준비를 많이 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더 마음 편하게 떠 있을 수 있는 것이네.
 

하지만 우리의 출세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마음의 동요에서 구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네.
언제 멈출 것인지를 우연에 맡길 것이 아니라, 그러기 훨씬 전에 우리는 스스로 멈춰서야 할 것이네.
그래야만 어떤 욕망이 마음을 자극한다 하더라도 한정되어 있는 까닭에 무한하고 불확실한 것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지 않을 것이네.
《인생이 왜 짧은가   p.102~104》


그러니 그대는 철학자들이 돈을 갖지 못하게 금지하는 일을 중단하시오!
지혜에게 가난을 선고한 자는 아무도 없어요. 철학자도 큰 재산을 소유할 수 있으나, 그것은 남에게서 빼앗은 것도, 남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불의를 저지르고 마련한 것도 아니며, 더럽게 모은 것도 아니며, 수입과 지출이 정직하여 시기하는 자 외에는 아무도 그것을 보고 한숨 짓지 않아요.
그런 재산이라면 그대가 원하는 만큼 쌓아 올리시오.
아무리 많아도 그것은 정직한 재산이지요.
그 중에는 남들이 저마다 제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많을지라도 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현인은 행운의 호의를 물리치지 않을 것이며, 정직하게 모은 재산을 자랑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것이오.
그러니 그가 자기 집 대문을 열고 모든 시민을 자신의 재산 앞으로 다가오게 하여 "누구든지 자기 재산이다 싶은 것이 여기 있다면 가져가시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에게 자랑거리가 되겠지요.
이렇게 말한 뒤에도 재산이 줄지 않는다면 그는 위대한 사람이고 최선의 부자인 셈이지요.
말하자면 그는 아무 탈 없이 안전하게 만인에게 수색을 허용하고, 그런데도 아무도 그에게서 압수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면, 그는 만인 앞에 떳떳한 부자인 것이지요.

현인은 부당하게 번 돈은 한 푼도 자기 집 문턱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겠지만, 그것이 행운의 선물이든 미덕의 결실이든 큰 재산을 문전박대하지도 않을 것이오.
왜 그가 그런 재산에게 좋은 자리를 내주면 안 되는 거죠?
그런 재산이 올 테면 오라지, 손님으로 맞아줄 테니까.

현인은 재산을 자랑하지도 감추지도 않을 것이며
- 하나는 진부한 사람의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겁 많고 소심하여 이를테면 큰 선(善)을 호주머니 안에 넣고 다니는 사람의 태도지요 -
앞서 말했듯이 문전박대하지도 않을 것이오.

그는 뭐라고 말할까요?
그는 "너는 필요 없어" 아니면 "나는 부를 쓸 줄을 몰라"라고 말할까요?
그는 제 발로 걸어서 길을 갈 수 있는데도 마차를 타기를 선호하듯이, 가난해도 되지만 부자이기를 원할 것이오.
마찬가지로 그는 재산을 가지되 그것이 마치 경박하고 덧없는 것인 양 다른 사람이나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것을 용납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는 선사할 것이오.
(왜 그대들은 귀를 쫑긋 세우는 것이며, 왜 지갑을 여는 거죠?)
그는 선한 사람들이나 선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에게 선사할 것이오.
이때 그는 수입과 마찬가지로 지출에 관해서도 해명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고는 심사숙고하여 가장 자격이 있는 사람을 선발할 것이며, 정당하고 납득이 가는 이유에서 선사할 것이오.
 
잘못 선사하는 것은 수치스럽게 잃어버리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지요.
그의 주머니는 열려 있어 많이 나오기는 하나 새어나가는 것은 없도록 구멍이 나 있지는 않을 것이오.
《인생이 왜 짧은가   p.215~217》세네카의 행복론,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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