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에게 '나이답게 행동하라'고 꾸짖을 때는 근면성과 엄숙함, 책임지는 자세에 대한 기대가 동반된다.

그러나 노인들에게 나이답게 행동하라는 명제는 좀 더 부담스러운 의미를 함축한다.

역설적이게도 노인들은 종종 주체성의 정도, 책임감, 자기 인생에 대한 통제력을 포기한 채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라는 기대를 받는다.

특정 나이를 넘어선 어른이 '노인처럼 행동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는 극단적으로 말해 인간의 행위가 개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연대기표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며 억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물고기는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정한 기준에 따르면 물고기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의인화된 물고기와 노인 사이의 차이는 주로 노인과 노인 이외의 사람들이 개인과 개인이

처한 환경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사실을 물고기의 열등함ㅇ로 여기는 것은 분명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자전거의 유용성은 물고기가 사용할 수 있는지의 능력 여부로 판단되어서는 안 되며, 물고기의 유용성 또한 두 팔과 두 다리, 잘 발달된 엉덩이를 지닌 인간에게 맞춰 설계된 기구의 사용 가능성

여부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노인의 능력을 평가할 때 우리는 종종 이 같은 유용성의 서열을 까먹는다.

예를 들어 나이 든 사람이 차에서 내리기 어려워하면 우리는 다리 근육의 약화와 균형 감각 상실 때문에 그렇다고 여길 가능성이 높다.

옆으로 몸을 움직이는 대신 승객이 정면으로 내릴 수 있도록 회전하지 않는 자동차 좌석에 결함이 있다고 여길 수도 있는데 말이다.

자동차의 결함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쓸모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25세 남자가 세발자전거를 타기 어려워하는 까닭이 기다란 팔다리와 부족한 유연성 탓이라고 결론 내리는 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생각해보라.

세발자전거가 25세 남자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듯, 자동차 좌석도 75세 노인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5세 노인이 자동차에서 내릴 때 어려워한다고 그 사람에 결함이 있다고 말한다면, 25세 젊은이가 세발자전거 경주에서 무능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노인의 정신적인 능력을 평가할 때 그들의 욕망과 의도, 관심이 젊은이들과 동등하다고 여기는 경우도 흔하다.

물고기 이야기로 되돌아가면, 물고기가 자전거에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매우 분명하다.

반면 노인의 행동 설명(또는 이해)에 그러한 유추가 적용되는 일은 드물다.

만화 캐릭터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도입부 몇 마디만 듣고 인기 순위 40위 안에 드는 최신곡을 알아차리지 못해도, 아이들은 부모가 얼굴 인식 능력이나 음악에 대한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결론짓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은 부모가 <포켓몬스터>나 아이돌에 관심이 없다고 올바르게 결론짓는다.

노인들은 기억력 검사 수행 능력을 포함해 젊은이들의 관심사에 단순히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더 건망증이 심한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다.

어떤 개인에게 전혀 관심 없는 정보가 주어진다면, 그런 정보는 기억 저장고에 담기지 못할 것이다.시간이 지나 그 정보 관련 질문에 그 사람이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 정보는 잊혀진 것일까?

나중에 잊힐 수 있으려면 학습부터 되어야 한다.

어쩌면 노인은 우리의 추측만큼 건망증이 심하지 않다.

부분적으로 그런 노인들이 있다면, 단순히 기억 저장에 좀 더 선별적인 것일 수도 있다.

 

pp.272~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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