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바이러스 방역에 성공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한국이 방역에 상대적으로 성공한 것은 선진국이어서가 
아니라 헬조선이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인적, 물적 자원을 갈아 넣을 
수 있는 곳. 원하면 통신사 기지국을 통해 시민의 동선을 샅샅이 복구할 수 있는 곳.
와불(臥佛)처럼 달관하는 대신, 보란 듯이 살아남고야 말겠다는 결기를 가지고 너나 할 것 없이 추노꾼처럼 전력 질주하는 곳. 

 

이곳에 안온한 선진국형 게으름과 권태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헬까페'에 독한 위스키와 커피가 넘치듯이, 헬조선에는 독한 역동성이 넘친다.
사람들은 여전히 
밥을 사냥하듯이 먹고, 자신이 굴릴 돌을 앞장서 고르는 시시포스의 심정으로 직장을 고른다. 각자도생에 분투하는 동안 삶은 빨리 지나가고,  영혼은 간헐적으로나 존재한다.

 

역병에 이어 도래할 경제 위기에, 시시포스는 노역에서 해방, 아니 해고될 것이 두렵다.
비참하게 죽기 싫어하는 그 두려움을 연료 삼아 
예언자들이 설치기 시작한다.
역병을 예측하지 못했던 지식인들이 
매스컴에 나와 역병 이후의 미래를 예측하기 시작한다.
마치 '노멀'이 
존재했던 양 이제 '뉴노멀'을 말하기 시작한다.
정치인은 구원을 
약속하고, 정치의 팬덤화는 가속화되고, 지난 100년 동안 지속된 한국 론장의 굿판적 성격은 변함이 없다.
생각의 폐허를 가득 채운 
구호와 비난과 불안과 억울함과 집단 흥분 속에서 소종파 종교들은 번성한다.
탁지원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에 
따르면, 한국에는 현재 자신을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종교 지도자만 20여 명, 재림예수를 자처하는 이도 50명이 넘는다.

 

예언가들이 횡행하는 이곳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려면, 선진국에 대한 환상에 쉽게 의탁하거나, 자신을 연민하는 정신적인 울보가 되거나,달콤한 힐링을 섣불리 찾지 않는 것이 좋다.
솜사탕으로 이루어진 
사회 안전망과, 흔적기관 같은 인권 의식을 가지고 선진국 행세를 하는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지당하기만 한 도덕적 담론을 넘어서는 강철 같은 생각이 필요하다.
잘 다져진 절망과 희망을 안고 강철로 
이루어진 생각의 징검다리를 밟으며 죽을 때까지 의연하게 걸어가야 

한다.

 

그와 같은 길을 앞서 걸어갔던 미국의 의학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는. 죽음을 앞두고 <나의 삶>이라는 글을 썼다.
그 글에서 그는 
담담히 회고한다. 자신은 맹렬하고 폭발적이고 극단적인, 불같은 열정의 인간이었다고. 즉 그의 삶은 헬조선과 같았다고. 열정을 가지고 지옥을 통과한 그가 내린 인생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지각 
있는 존재(sentient being)이자 생각하는 동물(thinking animal)로서 이 아름다운행성에 살 수 있었다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특권(privilege)이며 모험(adventure)이었다." 

 

실로 생각은 침잠이 아니라 모험이며, 그것이야말로 저열함에서 도약할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이다.
타인의 
수단으로 동원되기를 거부하고,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일을 넘어, 타성에 젖지 않은 채, 생각의 모험에 기꺼이 뛰어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터전이 바로 생각의 공화국이다.

 

pp.295~29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