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모든 인류학자가 이런 추세를 인류학의 승리로 생각한 것은 아니다.

사실은 전혀 아니었다.

EPIC(산업민족지학회담, Ethnographic Praxis in Industry Conference)이 영향력을 키우기는 했지만 일부 인류학자는 기업에서 일한다는 개념 자체를 싫어했다.

인텔의 인류학자 케이시 키트너가 인도로 떠난 연구 여행에서 '트립'이라는 학자와 만난 에피소드가 현실을 보여준다.

어느 밤에 트립과 키트너는 함께 담배를 피우면서 대화를 나눴다.

"트립이 담배를 깊이 빨면서 물었다.

'어떻게 인류학자이면서 인텔 같은 데서 일해요?'

키트너는 트립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았다.

기업이 당신의 영혼을 빨아먹지 않냐?

기업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의 삶을 파는 일이 혐오스럽지 않냐?

지본주의라는 짐승의 배꼽에서 일하면 어떤 기분이냐?

어떻게 그렇게 비윤리적인 조건에서 일할 수 있냐? 신념을 버리는 게 아니냐?"

 

키트너는 "아니"라고 답했다. 키트너는 인텔에서 일하는 것은 엔지니어들이 사람들에게 공감하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믿었다.

또 벨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사람들에게 기술은 캘리포니아의 20대 백인 남자들을 위해서, 20대 백인 남자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인류학자들 사이에는 불편감이 여전하다.

비즈니스 인류학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그들의 방법론이 희석되어 결국에는 사용자 경험(USX 혹은 UX) 연구, 인간 컴퓨터 상호작용(HCI), 인간 중심 설계, 인간 요인 공학 등에 흡수될까 봐 불안해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인류학자들이 기업에서 일하면서 변화하는 기업의 분위기에 휩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인텔도 예외는 아니었다.

21세기의 첫 10년간 인텔은 발 빠르게 인류학자들을 고용하고 인류학 연구를 활용해 고객을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두 번째 10년의 중반에 구조조정이 일어나면서 인류학자들이 여러 사업 부문으로 흩어진 데다 그 수도 감소했다.

부분적으로는 인텔의 고객사들이 자체적으로 민족지학자들을 고용하고 인텔이 더 이상 PC 위주의 단일한 생태계 중심에 있지 않다는 것이 원인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시아의 경쟁사들이 반도체 칩 부문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바람이 인텔이 전략적 난관에 부딪힌 것도 원인이었다.

실제로 2020년 말에 인텔은 활동가들의 표적이 될 만큼 상황이 심각했다. 

 

이론상으로는 인텔이 혁신적으로 사고하면서 앞을 내다보고 미래를 상상하고 기업 안팎의 문화적 패턴을 분석할 사람을 고용해야 할 필요성이 감소하기는커명 오히려 늘어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인텔 경영진은 (같은 처지에 몰린 거의 모든 기업과 마찬가지로) "비목적

(non-core)" 사업 부문을 축소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처음에서 시작한 곳에서 멀리도 오셨군요."

벨과 통화하면서 내가 웃으며 말했다.

문득 어린 시절의 벨이 오스트레일리아 오지에서 애벌레를 먹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내가 오비사페드에서 보낸 시절을 떠올리며 '우리 둘 다 시작한 곳에서 멀리 왔네요' 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벨도 반박하지 않았다.

 

인류학자들이 처음에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을 연구할 때는 새로운 변경, 곧 '낯설어' 보이는 문화를 탐색했다.

인텔에서 벨은 싱가포르 지하 주차장과 같은 의외의 장소에서 유사한 목표를 추구했다.

이제 벨은 '낯섦'의 새로운 변경, 곧 인공지능을 탐색하고 있었다.

이 모든 노력을 이어주는 끈은 벨이 컴퓨터역사박물관에서 내게 말한 목표였다

바로 서구의 힘 있는 엘리트들에게 "그건 당신의 세계관이지 모두의 세계관이 아니다!"라고 말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경자들이 이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벨이 말했다.

엔지니어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말을 들어야 할 또 하나의 집단이 있다.

바로 정책 입안자들이다.

다른 관점을 무시하는 것은 세계화 시대의 비즈니스에 해롭다.

전염병의 위험, 특히 범유행의 위험과 싸우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pp.8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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