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삶이 지니는 특징은, 일반적으로 서로를 타고난 신뢰로 대한다는 것이다.

진즉부터 아는 사이가 아니라 완전히 낯선 사람들끼리도 그렇다.

우리는 일부 특별한 상황에서만 낯선 이를 처움부터 불신한다.

(……) 우리는 애초부터 서로의 말을 믿는다.

애초부터 서로를 신뢰하는 것이다.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의미의 일부다.

그렇지 않고서는 인간의 삶 자체가 존재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예 우리가 살 수가 없다.

우리가 미리부터 서로를 불신한다면, 우리가 출발점에서부터 상대방이 도둑질하고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 의심하고 나선다면 인간의 삶은 삐걱대고 말라 죽을 것이다. (……)

그렇지만 신뢰는 자기 자신을 열어놓는 것이다.

덴마크의 철학자이자 신학자 K. E. 로이스트루프는 신뢰가 인간 실존의 기본 특징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지적은 분명 정확하다.

선천적인 신뢰가 없다면 인간은 성장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모두가 똑같은 정도로 남들을 믿지는 않는다. 불신을 타인이 나를 배신할 것이라는 믿음과 연결 지을 필요는 없으며 차라리 타인이 나를 좋아하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정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남들은 전반적으로 잘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타인을 꼭 사악하게 본다기보다는 '위험하다' - 자기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 고 생각한다 하겠다.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이들이 개인적인 정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부정적 반응이 두렵기 때문이요, 다른 사람들이 그 정보를 퍼뜨릴까 봐 두렵기 때문이리라.

이 가설은 외로운 사람들은 사교술이 부족할 것이라는 가설과 완전히 별개다.

또한 두려움과 불신은 스스로를 지속시킨다. 불신은 더 큰 불신을 조성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애초에 불신을 품은 개인은 타인을 신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상황으로부터 고립되기 때문이다.

외로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사회적 환경을 훨씬 더 위협적으로 지각한다.그리고 이 두려움은 다시 두려움을 완화할 수도있을 바로 그것, 즉 인간적 접촉을 방해한다. 사회적 두려움은 타인들과 직접 접촉하는 데 방해가 되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망친다.

신뢰가 부족하면 외로움이 생기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아니면, 신뢰 부족과 외로움이 상호 강화 관계에 있는가?

확실히 규정하기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외로움 때문에 사람을 못 믿는다기보다는 낮은 신뢰 수준이 외로움을 낳는다는 가정이 더 타당해 보인다.

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연구에서는 낯선 사람을 믿어선 안 된다고 교육받은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서 외로움을 더 많이 경험한다는 것을 입증했는데, 특히 이러한 영향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진중한 신뢰는 늘 위험에 대한 자각과 함께하므로 일말의 불신을 포함한다.

진중한 신뢰는 분명한 선을 두고 그때그때의 사정을 참작한다.

진중한 신뢰는 자기가 어떤 위험을 무릅쓰거나 상처받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인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신뢰를 보여줄 때 그러한 노출 혹은 취약성이 약용당하지 않을 거라고 추정한다.상대를 믿을 때는 상대를 믿지 않을 때에 비해 상대의 말과 행동을 훨씬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한다.

반면, 불신하는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나쁜 쪽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상호 의존을 배울 수 있는 인간관계에 진입하기가 힘들다.

여러분이 남들을 잘 믿지 못한다면 상호 작용을 제한할 수밖에 없을 것이요,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믿을 만하지 않다는 여러분의 생각을 뒤엎을 기회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불신은 자기를 벗어나 밖으로 뻗어나가는 데 방해가 된다. 그런 사람에게는 외로움이 따라올 가능성이 아주 크다.

 

pp.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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