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욱 - 포기하는 용기 |
이제 우리가 타인을 인정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한번 생각해보지요. 당신은 어떤 사람을 인정하시나요? 남을 배려하고 사려 깊은 사람에게 끌리지 않나요? 지식과 교양을 쌓아 마음의 깊이가 있는 사람을 존경하지 않나요? 사회적으로 성공해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사람을 선망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런 잣대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인정하며, 바로 그 방식과 시선으로 자기 자신도 바라봅니다. 그런데 나는 평가나 선망 또는 무시 같은 잣대로 남들을 보면서, 정작 그들에게는 나를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 말아달라고 요구한다면? 이건 정당한가요? 자신은 왜 그런 시선으로 평가받으면 안 되나요? 자신이 없기 때문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라는 요구는, 타인을 평가하는 잣대를 자신에게 적용하니 스스로 보기에도 별 볼 일 없고 사랑할 수 없더라는 자기 고백에 다름 아닙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기 바라는 것은 유아적이고 상상계적인 발상입니다. '어른'이 인정받는 것은 다른 차원이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인정할 건덕지'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먼저 사려 깊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의 학식을 연마해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돈을 벌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누군가가 가졌고 그를 인정한다면, 내가 그것을 가지면 스스로를 인정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나를 인정하겠다면서 정작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나를 사랑해야 돼'라고 자기암시만 하는 것은 자기 귀에 계속 거짓말을 속삭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신을 인정하기 위한 과정은 세상에 알릴 필요도 없고, 타인의 확인도 필요 없는 오로지 스스로에 대한 약속,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이행한 약속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정욕구의 메커니즘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결국 타인의 인정에 목매고 있지 않습니까. 저 역시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인정을 채우기 위해 헛된 노력을 거듭하기도 습니다. 하지만 저는 타인을 전제로 한 인정욕구의 구조를 넘어술 수 있는 '사건'을 스스로 만들었고, 결국 그 '과정'을 통해 저 자신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힘을 약간이나마 얻게 되었습니다. 나를 인정해주는 주체는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며, 인정의 순서도 역시 세상이 먼저가 아니라 나 자신의 기준과 근거가 먼저여야 합니다. 물론 우리 존재가 이미 타자를 기준에 놓고 자아를 형성했기에, 존재 인정의 주체와 순서를 바꾸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인정하기 위해 겪는 과정도 고통스럽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고통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합니다. 전자의 고통을 벗어나려면 반드시 타인이 있어야 합니다. 반면 후자는 오직 자신을 통해 삶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며,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과정입니다. 후자를 택했을 때 얻는 또 하나의 이득은 자신을 인정하게 됨으로써 역설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게 되며, 타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일 수도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로써 세상과 깊게 연대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까지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헛똑똑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남들의 인정에만 급급한 사람들 때문에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기를 성찰해 세상과 공감하는 경험이 없으며, 그저 세속적인 인정과 권력에만 탐닉합니다. 그들은 권력이, 돈이, 명예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보장해준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허망한 행위만 반복시킬 뿐입니다. 스스로를 인정하기 못하는 사람일수록 세속적인 허명虛名에 자신을 더 옭아매기 때문입니다. 존재가 불안할수록 허명에 목을 매게 되어 있습니다. 저 역시 제 존재가 불안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불안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세상의 허명을 좇지 않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불안의 고통 속으로 오히려 자신을 밀어 넣어본 한 번의 경험 덕분에, 불안을 느낄지언정 그 불안에 송두리째 휘둘리지는 않게 된 것 같습니다. 불안은 항시 찾아오지만 어느덧 제 오랜 친구가 되었고, 저는 그것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인정한 사람이 되면 불안을 잘 견녀낼 수 있고, 자기 삶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힘으로 타인의 삶도 도와줄 수 있습니다. 나를 인정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이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만이 인정할 수 있는 '그것' 하나를 갖추면 충분합니다. 누구의 인정도 바라지 않고, 세속적 보상이 없어도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낸 사람, 즉 자신을 지켜낸 사람만이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정이라는 무의식의 메커니즘을 분명히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드렸습니다. 너무 거창하고 너무 멀고 아득한 일이라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요?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모든 일은 그저 작은 한 걸음에서 시작됩니다. 자질구레한 짐과 가재도구로 꽉 찬 집에 이삿짐을 옮기려 들어온 아저씨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이던가요. 바로 눈앞에 있는 짐들부터 하나씩 바구니에 챙겨 넣는 것입니다. 저 멀리 까마득한 산에 도달하게 하는 것도 바로 처음 한 걸음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잘 아시잖아요. 제가 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가능한 한 깊이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구조가 얼마나 복잡미묘하게 층층으로 겹쳐 있는지를 보곤합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사실 나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이 함께 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욕망이란 '동력'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이해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성공하고 싶다면, 그 동력(욕망)이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상담실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일상생활에서 깊은 얘기를 나눈 사람들과의 경험으로 미뤄보면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고통을 겪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타인, 남의 욕망은 대부분 부모의 욕망인 경우가 많습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면 부모들이 자녀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조수미 씨나 김연아 씨의 어머니처럼 강력한 욕망이라면 처음부터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사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부모의 욕망은 아주 은밀하고 '평범'해서 그것이 나의 욕망인지 부모의 욕망인지 구분해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타자의 욕망'과 '주체의 욕망'을 구분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타자의 욕망은 실현해낼수록 소진되고 맥이 빠진다는 것입니다. 남의 욕망을 내가 대신 이루었으니 힘이 빠지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을까요. 성공에 대한 욕망이 자신의 것인지, 타자의 욕망을 자기 것으로 오인해서 실현시키려는 것인지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많은 불행이 거기에서 비롯되었다면 내 욕망의 주체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욕망과 타자의 욕망을 구분해내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정말 알차게 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니까요. 자, 이제 다시 좀 더 일상적인 현실로 돌아와서 성공과 욕망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가 가지려는 직업이나 성취하려는 목표는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습니까? 아마도 대부분 사회적 영향을 받습니다만, 그중에서도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대체로 부모들입니다. 물론 부모님들도 사회적 영향을 받았겠지만요. 최근에 저는 어느 지방자치단체의 요청으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만나서 장래희망을 물어보았더니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공무원'이라고 대답하더군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대부분 부모님이 그게 제일 좋다고 했기 때문이랍니다. 이것이야말로 타자의 욕망을 따라 하는 전형적인 예시죠. 아이들 말고요, 그 부모들 말입니다. 부모들은 자녀의 '안정된 미래'를 위해 공무원이 되라고 하지만, 나중에도 그 직업이 좋은 직업으로 남아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자기 확신이 없는 상태로 남의 욕망만 믿고 따라 한다는 것은, 심하게 말해 얼마를 잃을지 모르는 내기에 자신을 투기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나아가 부모의 요구를 주체적인 시각으로 심각하게 검토해볼 이유가 있습니다. 자녀에게 '안정된 미래'를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부모의 지금 삶이 불안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만족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나는 만족한 삶을 원해'라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의 현재 삶이 불안하니 그 불안을 자녀에게 투사해 불안을 감소시키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누그러뜨리려는 것이죠. 이렇게 강요된 목표가 아이들의 삶의 지표가 될 리 있을까요? 그럴 리도 없지만,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정말 비극이겠죠. 아이들의 미래를 부모가 결정하고 있으니 말입니다.제가 이 자리에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성공에 대한 정의입니다. 성공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대기업 임원이 되면 성공입니까? 재산을 많이 모으면 성공인가요? 권력을 가지면 좋을까요? 만약 이 세 가지를 다 가진 사람이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세속적 성공과 개인적 불행을 등치시키려는 말이 아닙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성공이 다 다를 수 있는데, 우리 한국사회는 자기 기준에 의거한 성공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더 중시합니다. 욕망도 내 욕망이 아니고 성공의 잣대도 내 것이 아닌 사람에게, 성공이라는 것은 환상을 넘어 허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 성공하고자 한다면, 먼저 성공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을 확립하는 '성공'을 먼저 경험해야 합니다. 그 과정은 자신의 욕망을 면밀히 검토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 책은 4가지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질문1.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나는 나 자신에게 인정받을 만한 괜찮은 사람인가?"라고 쉽게 생각해요. 책이 던진 첫 번째 화두는 '인정'과 '인정욕구'입니다. 인간이 처음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대상이 자신이 아닌 타인이라는 점이 인간 최초의 비극이라 합니다. 타인은 부모에서 출발하여 성장 과정을 거치며 자신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자신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마저도 타인이 되는 사회 구조를 지적합니다. 타인의 인정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정욕구를 충족시키는 기준은 "자신"이 만든 자신을 "인정할 건덕지"라고 합니다. '자기 인정욕구'가 충족되면 타인의 시선이 유발하는 존재의 불안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질문2. 나는 누구로 사는가? 이 질문은 "가족, 집단 내에서 어떠어떠한 역할의 가면이 아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고 있는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네요. 삶의 의미를 타인을 통해 확인하지 말고,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것을 실천하라고 합니다. 어떠한 역할을 통해서 완벽한 행복을 꿈꾸는 자신을 포기하라고 합니다. 책은 자기애적 성향의 사람, 자기연민이 강한 사람을 소개하며 완벽한 행복을 꿈꾸는 불안한 당신을 불안의 원천에서 해방시키려 합니다. 이 과정을 위해서는 '결정'과 '행동' 즉, 결행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직접 발견할 수 있다고 보네요. 질문3. 나는 왜 불안한가? "나를 불안하게하는 것들을 당당히 직면할 수 있는가?"로 쉽게 생각해보죠. 책은 죽음 혹은 비존재(생물학적 죽음), 책임을 동반한 선택의 자유, 성공을 불안의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죽음은 죽음 자체가 아닌 죽음으로의 과정을 두려워하는 것이며, 외면, 무시와 같은 생물학적 죽음(왜 사회적 죽음이 아닌 생물학적 죽음이라 하는지는 모르겠네요)은 다른 이들에게 죽음을 비롯한 생물학적 죽음을 환기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외면당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들을 직면하라고 합니다.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고 합니다. 선택을 필요로 하는 자신 또는 관계 사이의 숨은 그림자(난 돈벌어올께 넌 현모양처가 되어줘....와 같은)와 자신이 전가했던 책임의 본질과 서로 대면해야만, 선택으로 인한 불안에서 자신 또는 자신과 상대방을 위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성공의 경우,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와 이유는 타인이 아닌 자신의 것이어야 하고, 그 성공의 기준도 타인이 아닌 자신이 제시한 성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인이 개입되면 불안해진다는 것이죠. 질문4. 나는 타인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나와 타인과의 관계는 건강한가?"에 대한 즉, 나와 타인의 관계를 점검해 볼 수 있는 질문입니다. 책은 공생, 의존, 우울, 회피애착 관계를 통해서 설명합니다.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과거를 냉철히 돌아보며, 자신이 관계 맺는 방식으로 형성된 관계들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맺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 부분은 실질적인 상담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암묵적으로 독자 자신이 대입해서 읽기를 바라고 있습니다(책의 다른 사례도 쌤쌤). 모든 사람들 아니 최소한 '포기하는 용기'라는 책을 집어든 독자라면 책이 소개하는 사례의 인간적 성향, 자아 형성의 면모들을 조금씩이라도 공유하지 않을까요?(이 부분은 여기서 몇줄로 끄적일 내용이 아닙니다) ------------------------------------------------------------------------- 만약, 책이 나에게 한마디 한다면, 너 자신을 위로할 정도의 노력은 했을지 몰라도 스스로 "감동"을 받을 만큼 노력하지 않은 너의 현재의 모습을 인정해! 평탄한 삶을 원하지만 그래도 남들보다는 조금은 화려한 삶을 원한다면, 너는 계속해서 남들의 시선에 의존한 성공과 평탄하다 말하지만 실질은 "너에게만은" 완벽한 삶을 이루려는 욕망에 쌓여 그 욕망이 가져오는 불안을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 할 거야!! 그리고 그런 불안들 속에서는 너 자신을 발견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을 거야! 너무 비약이 심했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을 주네요. 책이 전하는 말 한마디가 일회용 '뽕'인지 아닌지, 말 한마디에 바뀌는 터무니없는 삶을 만드는지는 제가 결정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렸겠지요? 자신을 뒤돌아 보고, 앞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선택할 결과들에 대해서 무엇을 선택하지 않았음을 성찰하며 책임지는 인생을 살기를 바래봅니다. 마지막에 말하는 초라함을 이해하시나요? " 아, 나는 참 초라하다. 초라한 제 삶이 저를 믿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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