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겉보기에는 어느 정도 잘 살게 된 한국이 오래전 이미 지나온 시절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간혹 특정 국가의 사람을 함부로 가엾다거나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때도 있었다.

생김새나 치장이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세계의 공통어를 전혀 다루지 못한다는 이유로, 공공장소에서의 매너나 의식의 수준이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나는 그들을 경멸하거나 하등하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뒤늦게 나의 뇌리를 관통하는 꾸짖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같은 조건이었다면 우리는 결국 그들과 비슷하게 살았을 것이다.'라는 단순한 문장이었다.

누구에게나 지나온 시절이 있꼬 앞으로는 다가올 시절이 있듯이 같은 조건 하의 국가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비슷한 모습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다만 미리 앞서간 국가들이 뒤따라오는 국가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부유해졌다고 해서 가난한 시절의 역사가 삭제되진 않는다.

그 시절을 부정하고 뒤따라오는 자들을 차단하거나, 과거를 자양분으로 삼아 그들이 좀 더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보호해 주거나 그것도 아니면 방관하는 입장을 택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을 책임지는 한 사람으로서, 상대적으로 많이 벌 수 있는 한국에서 사람 이하의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더 이상 음지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쌍하다며 외면하는 사람들과,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고, 범죄 발생률이 높아진다며 추방하자는 사람들과, 인권을 보장해 주자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이런 의견들의 건너에는 이주 노동자들의 입장도 있다. 고국에서보다 많이 벌 수 있어서 고국의 누군가에게 더 많은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이거나, 그들을 위해서라면 온갖 수난을 견딜 수 있다는 희생정신이거나, 먼저 성장한 국가에서의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희망일 수도 있지 않을까. 성장의 속도와 차이가 입장의 대립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한국으로 오거나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때 직접적으로 그들을 대면한다.

그들을 단체로 태우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는 유독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손에는 여러 가지 선물들이 들려있다.

전자제품에서부터 식품까지 하나라도 더 가족들에게 가져다 주려는 마음들이 빼곡하다.

물론 일하는 입장에서는 그 많은 짐들이 반갑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버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서로의 입장을 알게 되면, 서로가 조금씩은 마음의 짐을 덜고 한 걸음씩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여행길이 아닌 마침내 고국으로의 귀향길에 오른 그들을 대할 때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젖어든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행동에 가식이 끼어들 틈이 사라진다. 아무리 노동의 강도가 버거운 날일지라도 마음이 시키는 행동에는 고됨이 없다.

모두들 각자의 사연으로 어딘가를 떠나 어딘가로 향한다.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는 사연도 있겠지만 영영 그럴 수 없는 사연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몸은 떠나지만 마음만큼은 떠나가는 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저 멀리서 맴돌다 뒤늦게 따라온다. 모든 게 다른 넓은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이지만 떠나고 돌아오는 사연들은 너무도 

닮아있다.

그들은 결국 모두 그리운 것으로 향한다. 그리운 것을 위하는 방향으로 향한다.

그래서 그들은 마침내 사람으로 향한다. 그 사람이 결국은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바로 우리가 국경 없는 시대에 진짜의 국경을 넘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pp.23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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