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번역문을 첨삭하면서 관형격 조사 '~의'가 제대로 쓰였는지 유심히 본다.
외국어 투 문장을 양산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수없이 첨삭했지만 관형격 조사 '~의'를 본래 쓰임새에 맞게 잘 쓴 문장을 별로 본 적 없다.
다음 문장의 조사를 유심히 보면서 어색한 부분을 찾아보라.
인터넷의 발달은 정보 접근의 쉬움과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의'를 다른 조사로 바꾸고 명사구를 풀어 쓰면 더 한국어답게 쓸 수 있다.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정보에 접근하거나 자기 역량을 펼치기도 쉬워졌다.
조사를 적절하게 바꾸어 번역을 완결 짓자.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비매품으로 제작하는 일 자체가 저작권법의 위반이다.
→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비매품으로 제작하는 알 자체가 저작권법을 어기는 일이다.
관형격 조사 '의'는 종속 개념을 뚜렷이 드러낼 때 자기 역할에 잘 들어맞는다.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나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공적인 영역에서 '나의 방송'이라든지 '내 영화'라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얼핏 형식은 맞는 듯해도 그런 철없는 표현 같다.
방송 프로그램이나 영화는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드는 종합 예술이기 때문이다.
주종 관계나 소유를 드러내는 '의'는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니고 명백한 주종 관계를 표시하려고 쓴다.
라이너스의 담요
베르디의 오페라
알 파치노의 맹인 연구
관형격 조사 '의'를 잘못 쓰면 엉뚱하게 엉켜 버리기도 한다.
'한 통의 편지'는 미흡한 한국어지만 '편지 한 통'이라고 고치면 흡족한 한국어 구절이 된다.
'번역은 일종의 소통'이라고 쓰면 미흡하지만 '번역은 소통의 일종'이나 '번역은 소통과 비슷하다'라고 고치면 흡족하다.
다 같은 한국어 제목이라도 '의'를 잘못 쓰면 엉성한 번역으로 남는다.
'종의 기원'이나 '과학 혁명의 구조'나 '암흑의 핵심'에서 '의'는 적절하지만 '침묵의 봄'에서 '의'는 적절하지 않다.
관형격 조사 '의'를 빼고 '참묵하는 봄'이라든지 '적막한 봄'처럼 써야 원뜻을 잘 전달한다.
배우 윌 스미스가 출연한 영화 『행복을 찾아서』는 무난하고 좋은 번역 제목이다.
원제는 'The Pursuit of Happiness'인데 '행복의 추구'라고 어색하게 옮기지 않고 원뜻을 잘 살렸다.
원제보다 흥미롭게 옮겨야 한다는 무모하고 쓸데없는 강박도 없다.
제목 번역을 아예 포기하고 음차 수준에 머물기로 작정한 듯한 영화판에서 보기 드문 모범 사례다.
pp.182~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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