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회의주의에서 언급되는 '회의懷疑, doubt'는 어떤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회의'란 앎의 문제에 있어서 확실성을 의심하는 지적인 태도들 말한다.
우리말의 회의주의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skepticism'이고, 이 말의 그리스어 어원은 '스켑토마이skeptomai'라는 동사로 '···을 탐구하도'라는 뜻이다.
이 말을 좀 더 개념화하면, 대상과 일정한 거리두기를 하면서 지식이나 신념을 믿지 않는 의심 행위나 지적 태도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회의라는 말에는 대상에 대한 인식을 당연시하는 인식론적 독단주의에 대한 비판이 내재되어 있다.
진리에 대한 추구라는 관점에서 볼 때, 회의 또는 의심은 '탐구zētēsis' 개념과 같은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회의하다skeptomai'는 '탐구하다zētēo'와 의미가 동일한 것이다.
회의주의자를 의미하는 '스켑티코이skeptikoi' 역시 '탐구자zētētikoi'와 같은 뜻을 지닌다.
물론 회의라는 개념은 일차적으로 세계에 대해 확실한 인식을 얻고자 하는 우리의 인식 능력을 의심하고 한계 짓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탐구하다'라는 어원이 보여주듯이 회의주의는 본질적으로 진리에 대한 탐구와 연관된다.
그래서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는 '회의주의의 길skeptikē은 '탐구zētētikē의 길'이라고 규정지었던 것이다.
다음은 이와 연관된 섹스투스의 언급이다.
회의주의란 어떤 방식으로든 보이는 것들(현상들)과 사유하는 것들을 대립시키는 능력이다.
서로 대립되는 사태들이나 진술들이 함께 있어서 평형을 이루므로, 우리는 이러한 능력으로 인해서 판단유보에 이르며, 그 후에 마음의 평안ataraxia에 이르게 된다.
회의주의자는 보이는 것들과 생각하는 것들의 불규칙성을 해소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했으나, 이런 목적을 이룰 수 없었으므로 판단을 유보했다. 그런데 회의주의자가 판단을 유보했을
때, 마치 물체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예기치 않게도 마음의 평안이 회의주의자에게 생겨났다. ···
회의주의자의 최종 목표가 믿음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마음의 평안인 반면, 우리에게 불가피하게
강제되는 것들과 관련해서는 감정의 순화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섹스투스에 의하면 회의주의의 길은 '아포리아aporia의 길'이자 '판단유보의 길'이기도 하다.
그것은 모든 일에 의문을 품고 탐구하는 길이며, 긍정해야 할지 부정해야 할지 모르는 길이었기에, 그 길을 '아포리아의 길'이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이러한 아포리아의 길을 따라 우리의 사유는 '사고의 유보'로 이어지는데, 그는 이를 어떤 것도 거부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 '판단유보의 길'이라 명명했다.
이렇게 해서 고대 회의주의에서 가장 강력한 원리인 '판단유보'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유보를 지식은 발견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지적 무기력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회의주의자들에게는 '이론과 체계가 획득될 수 있다'는 지적 자만이 거부의 대상이었듯이, '이론이나 체계가 발견될 수 없다'는 패배주의 역시 거부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회의주의자에게 가장 어울리는 이름은 '중도中道, golden mean의 철학자'일지도 모른다.
pp.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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