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잘 나가는 사진관이 있다. 사진관이 잘 나가봐야 동네 사진관일거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30초면 그달 치 예약이 완료된다.

더구나 이곳은 모델사진이나 기념사진도 아닌 신분증이나 이력서용 증명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미국, 홍콩, 제주도에서도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찾아오는 이곳은 20대 김시현 대표가 운영하는 '시현하다' 사진관이다.

그녀는 증명사진은 단순히 신분증을 위한 사진이 아니라 그 순간의 모습을 기록하는 초상사진이라고 정의한다.

증명사진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 '증명'하는 사진이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러 올 때는 화장도 평소대로 하고, 자신에게 맞는 배경색도 골라오라고 한다.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은지, 형용사도 3개 골라오라고 한다. 자연스런 개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대화도 많이 하고, 찍히는 사람의 개성에 맞춰 조명도 바꾼다.

그래서 하루 10명의 사진만 찍는다. 

획일적으로 보정한 모습보다 정말 당신 같은 사진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평소 앞머리를 내리는 사람에게 눈썹 노출 규정에 맞춰 이마를 훤히 드러내라고 요구하지 않고, 최소한 눈썹만 드러내는 방법을 고객과 함께 찾아주기도 한다.

'다 사람이고 다 예쁘다'라는 것이 사진에 대한 그녀의 철학이다.

특목고를 준비하던 중학생 시절, 그녀는 좋은 대학과 대기업 취업만이 행복한 삶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대안학교로 진학을 결정하고 부모님의 허락을 받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사람 만나는 게 좋아 무턱대고 카페를 차리겠다고 부모님께 요청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

그녀는 2학년 때 진로수업을 통해 사진관이라는 소박한 꿈을 찾게 된다.

그녀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포토샵을 독학으로 공부하였고, 친구들의 사진을 보정해 주는 것을 즐겼다.

일곱 번의 전학을 다니면서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즐겼고, 셀카 잘 찍는 법도 익혀서 직접 가르쳐 주었다.

친구들은 그녀가 찍어준 사진을 자신들의 프로필 사진으로 올렸다.

진로는 자연스럽게 사진이라는 업으로 귀결됐다.

많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대기업과 경쟁을 피해 동네 장사로도 먹고 살 수 있는 사진관 언니를 인생 목표로 삼았다. 

대학도 가지 않을 생각으로 부모님께 건의했다가, "안 가는 것이 아니라 못 가는 거겠지"라는 말에 욱해서 사진학과에 진학했다.

교수님 추천으로 한국의 손꼽히는 스튜디오에서 일해 봤지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는 맞지 않았다.

그녀는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돼서도 일할 수 있는 사진관이 더 좋았다. 

그녀는 일찍부터 인생 키워드를 찾고, 자신에게 맞는 소빅한 꿈을 그려왔다.

그리고 그 소박한 꿈은 기대 이상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녀의 작품은 그 자체가 마케팅 수단이었고, '시현하다'의 팬들은 곧 가장 강력한 마케터가 돼주었다. 

'시현하다'에는 자신의 배경색을 레드 또는 블랙이라고 밝히는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이 녹아있다.

그래서 보름간의 여행을 떠나고 일주일에 4일만 영업하면서 삶의 여유와 행복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제안을 가족사진으로 조심스럽게 확장하려 하고 있다.

아직은 어르신들의 얼굴 주름을 자연스럽게 잡아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지만 '예쁜 사진 하나도 없는 엄마에게 인생사진을 남겨주고 싶다'는 딸들의 바람에 용기를 내본다.

 

pp.270~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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