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는 어때?"
"좋아!"
그 애 앞에는 뽀얀 국물의 기본 칼국수가, 내 앞에는 붉고 걸쭉한 국물의 팥칼국수가 놓였다.
메뉴를 고를 때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걔는 비건이었다.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이제 자주 만나지 않는다.
업데이트되는 SNS 프로필 사진으로 생사 여부를 아는 정도의 관계다.
나는 그 애를 정말 좋아했을까?
칼국수에 쓰인 육수는 비건이 아니었을 텐데. 함께 올라온 겉절이 역시 마찬가지였을 텐데. 가끔씩 묻고 싶다.
그때 정말 괜찮았는지. 집에 가서 불편한 마음으로 일기나 시를 쓰지는 않았는지.
이후 언젠가부터 나는 한동안 비건과 페스코 베지테리언을 오가면서 동물권에 관한 내 윤리관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그 애 영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사람을 잘 만나지 않았고 그게 편했다.
나는 이 식사에 관한 내 가치관을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잘 발설하지 않았다.
나로 인해 타인이 겪게 되는 불편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 두려웠다.
유별나고, 함께하기 번거롭고, 손 많이 가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건 내게 일어날 수 있는 끔찍한 일 중 하나다.
밖에서 사람을 만나면 별말 없이 고기를 먹었다. "고기를 먹자!"라고 한 건 아니지만 사실 아직도 이 사회는 일일이 소거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육류를 먹게 되는 식문화라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고기를 먹었다. 아무렇지 않게.
아니, 어쩌면 오히려 맛있게. 내 비겁함과 게으름을 무기로 나를 잘도 어겼다.
여전히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전자레인지로 간단히 조리한 닭가슴살을 식탁에 올린다.
하지만 때로는 얼린 템페(발효시킨 콩을 뭉친 것으로, 인도네시아 전통 요리 중 하나)를 해동하고 원목 도마에 올려 슬라이스한 후 올리브오일을 적당히 두른 팬에 노릇노릇하게 굽는다.
발효된 콩의 고소함과 달궈진 기름의 그윽한 향이 침샘을 자극한다.
과정과 결과 중 어떤 게 중요하냐는 물음은 내게 어불성설이다.
과정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기에.어느 게 더 맛있냐고?
템페 요리다.
어느 게 먹을 때 더 기분의 좋으냐고? 당연히, 템페 요리다.
수없이 많은 실패를 거듭한다.
샐러드에 올릴 토핑을 고를 때 소고기와 병아리콩 사이를 수백 번 오간다.
떡볶이 위에 치즈를 올릴 것인가 말 것인가의 사이에서도.
와인 안주로 올릴 육포와 통밀 크래커 사이에서도.가끔은 평소 잘 먹지도 않는 우유를 냅다 시리얼 위에
부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부적을 쥔 것처럼 두유 팩을 쥔 손의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하면 그래도 좀 더 나를 지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폭력성이 잠재하고 있는 익숙함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순간은 중요하다.
쌓여가는 실패를 못 본 척하는 것은 자기 기만일 테지. 하지만 그럴수록 매일 조금씩 높아지는 실패의 탑을 부수려고 하기보다는 그것이 높아질 자유를 줘야 하는 것 같다.
그것들이 미래의 내 선택에 반드시 영향을 미치도록. '나 어제보다 이만큼 자랐어.
너 어떻게 할 거야?' 그렇게 그 탑이 내게 반드시 묻도록.
pp.128~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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