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爲政) 6章 - 효,질지우(孝,疾之憂)
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맹무백문효. 자왈: 부모유기질지우.)
맹부백이 효를 묻자, 공자께서 답하셨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근심하신다."
* 孟武伯(맹무백): 맹의자의 子, 이름(名) ?(체)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ranslated by James Legge)
Mang Wu asked what filial piety was.
The Master said, "Parents are anxious lest their children should be sick."
* filial: (부모에 대한) 자식의, piety: 경건함, (filial piety: 효도)
[해설]
☞ 孝란 헤아릴줄 아는 마음
5장에서 맹의자의 효(孝)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 '무위(無違)' 살아계실 때나 돌아가실 때나 제사지낼 때 한결같이 예로써 어김이 없어야 함을 강조하였으나, 6장에서는 맹의자의 아들인 맹무백에게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기를 주문하고 있다. 두사람 모두 노(魯)나라의 대부들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들이기에 공자께서 효(孝)에 비유하여 백성을 위한 정사에 대해 자문을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구절이다. 부모로서 자식을 걱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근심걱정이 왜 효(孝)를 잘하기 위한 대한 답이 되는 것일까를 생각해보면 공자의 위대함에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지극하다. 그 지극함에는 늘 신병에 대한 염려가 근심으로 우선된다. 왜냐하면 건강이 생명의 연속에 대한 가장 최우선적인 명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식으로서 이러한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효를 생각한다면 자신의 몸을 병들지 않게 건강하게 지키는 것을 최대의 효로 알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바로 그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것. 그 것이 효의 기본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맹무백의 효에 대한 질문에 공자는 부모의 마음을 미리 아는 것을 일러 주었다. 이는 정사를 펼치는 지위에 있는 맹무백에게, 백성의 마음을 미리 알아서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백성을 대하라는 주문인 것이다.
오늘날의 조직이나 집단에서도 리더가 가져야 할 자질 중 가장 대표적인 자질이, 윗사람에게 그러하듯이 조직구성원들의 마음을 헤아릴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위정(爲政) 7章 - 능양(能養)
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자유문효.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 지어견마, 개능유양; 불경, 하이별호?)
자유가 효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의 효는 능히 봉양을 잘하는 것이다. 개와 말에게도 모두 봉양함이 있으니 공경하지 않는다면 어찌 다를 바가 있겠는가?
* 자유(子游): 공자의 제자, 성(姓)은 언(言), 이름(名)은 언(偃)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ranslated by James Legge)
Tsze-yu asked what filial piety was. The Master said, "The filial piety nowadays means the support of one's parents. But dogs and horses likewise are able to do something in the way of support;-without reverence, what is there to distinguish the one support given from the other?"
* filial: (부모에 대한) 자식의, piety: 경건함, (filial piety: 효도)
[해설]
☞ 공경함이 없는 단순 봉양은 효가 아니다.
고대 옛날이나 현대 지금이나 인간성의 발로라는 측면에서는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부모에게 효를 하는데 있어 봉양하는 방법에서부터 논란이 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봉양한다는 것은 음식으로 공양함을 말하는데, 집에서 기르는 개나 말과 같은 가축의 경우도 음식으로 기르니 이른 바 부모에게 봉양하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오늘날은 특히 반려동물이라고 하여 애완동물에 대한 인간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보게 되는데,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태도는 차지하고라도 정작 부모에게 쏟아야 할 봉양을 동물에게 더 많이 쏟는 일부 사람들의 세태가 더 심각하다.
여기서 효라는 것은, 그러한 봉양의 차원에서는 다를 바가 없지만 부모에게는 공경하는 마음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공경함이 없다면 개나 짐승을 기르는 것처럼 단순 봉양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 물질적으로 봉양만이라도 잘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깨우침인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나 집단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의 상사나 조직에서의 리더는 부모와 같다. 윗사람을 따르며 일한다는 것도 상사나 리더에 대한 공경이 있지 않고서는 진정 어린 팔로워잉(Following)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또한 형식적인 팀워크로 인해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그런 조직이나 집단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를 별로 본 적이 없다.
물론 상사나 리더의 노력도 필요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일지라도 나 자신의 품격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진정한 팔로워(Follower)'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도록 노력하자.

 

위정(爲政) 8章 - 색난(色難)
子夏問孝. 子曰: 色難. 有事弟子服其勞, 有酒食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자하문효. 자왈: 색난. 유사제자복기노, 유주식선생찬, 증시이위효호?)
자하가 효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려우니, (父兄에게 일이 있으면) 자식과 아우가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과 밥이 있으면 부형에게 드시게 하는 것을 일찌기 효라고 할 수 있겠는가?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ranslated by James Legge)
Tsze-hsia asked what filial piety was. The Master said, "The difficulty is with the countenance. If, when their elders have any troublesome affairs, the young take the toil of them, and if, when the young have wine and food, they set them before their elders, is THIS to be considered filial piety?"
* countenance: 얼굴(표정), 지지(동의)하다, troublesome: 고질적인, toil: 노역,고역
[해설]
☞ 효(孝)는 유순하고 공손한 태도로..
'색난(色難)'은 어버이를 섬길 때에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려움을 말한다. 또한 부모의 얼굴빛을 받들어 순종하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로도 통한다.
효자로서 부모에 대한 사랑이 깊은 사람은 반드시 유순한 얼굴빛을 지니고 있고, 유순한 얼굴빛을 지닌 사람은 반드시 공손한 용모를 하고 있다. 보통사람이 부모를 모심에 늘 얼굴빛과 몸가짐을 유순하고 공손하게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즉, 효(孝)란 부모의 일을 대신하여 수고를 대신하거나 혹은 음식으로 잘 봉양한다고 해서 진정한 효가 될 수 없으며, 부모의 마음을 미리 헤아리고 항상 온화한 표정과 공손한 몸가짐으로 받드는 것이 진정한 효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위정(爲政)편에서 공자께서는 효(孝)에 대한 가르침을 그 사람의 수준과 성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말씀하신 것을 알 수 있다.
노(魯)나라 대부 맹의자(孟懿子)란 사람은 대체로 무난한 성향이라 일반적인 내용인 '무위(無違)'를 주문하였고, 그의 아들 맹무백(孟武伯)은 일을 벌이는 성향이라 부친 맹의자의 근심을 많이 사다 보니 '질지우(疾之憂)'를 주문하신 것이다. 또한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는 봉양은 잘하나 공경함이 모자랄까 염려해서 '능양(能養)'을 말씀하신 것이고, 또 다른 제자 자하(子夏)는 강직하고 의롭지만 온화함이 부족하다보니 '색난(色難)'을 말씀하신 것이다.
※ 공자의 효(孝) 가르침

대상 성향 가르침 내용 맹의자(孟懿子) 무난함/일반적임 무위(無違) - 어김이 없도록 하라/한결같이 도리에 맞게. 맹무백(孟武伯) 자기과시형/섬세함 부족 질지우(疾之憂) - 마음을 먼저 헤아려라 자유(子游) 모범적 행동/진정심 부족 능양(能養) - 단순 봉양보다는 공경한 마음가짐을 먼저하라 자하(子夏) 강직 의리파/온화함 부족 색난(色難) - 유순하고 공손한 태도/얼굴빛을 살펴라

사실 논어를 보다보면 공자의 가르침은 상황과 상대방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맞춤형' 처방을 내리신 것이라 하겠다. '맞춤형'에는 끊임없는 관찰과 그에 따른 정확한 판단이 따라야 가능한 것이니, 현대 조직에서 리더로서의 자질에는 그러한 세세한 살핌과 그에 맞는 적절한 피드백이 있어야 함을 배울 수 있겠다.

 

위정(爲政) 9章 - 불위불우(不違不愚)
子曰: 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違.
(자왈: 오여회언종일, 불위여우. 퇴이생기사, 역족이발. 회야불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회와 더불어 온종일 이야기 하였으나 내 말을 어기지 않아 어리석은듯 하더니 물러간 뒤에 그 사생활을 살펴봄에 충분히 발명하니 회는 어리석지 않구나.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ranslated by James Legge)
The Master said, "I have talked with Hui for a whole day, and he has not made any objection to anything I said;-as if he were stupid. He has retired, and I have examined his conduct when away from me, and found him able to illustrate my teachings. Hui!-He is not stupid."
[해설]
☞ 진정한 실천가는 말로 하지 않는다..
'不違(불위)', 말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의견이 서로 상충되지 않아서 어떠한 질문이나 논란제기 없이 오직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을 말하며, '發(발)'이란 말의 뜻을 스스로 깨달아서 밝힘을 말한다.
안회(顔回)는 안자(顔子)라고도 불릴 만큼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인품이나 학문의 수준이 높았던 공자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 그런 안회가 공자의 말씀에 일언반구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이기만 하여서 가르침을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못 알아들은 어리석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혼자 있을 때 일상생활 속에 행동하는 모습에서 공자의 도(道)를 충분히 소화하고 실천하고 있음을 보고서야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아신 것이다.
세상에는 말이 많은 사람들도 문제이지만 말이 아예 없는 사람들도 문제라고 생각되어지기도 한다. 적당한 질문과 적절한 논의 제기는 적극적인 관심의 표명이자 자기 것으로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한데, 전혀 말이 없다는 것은 무관심 하거나 잘 못 알아들었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안회와 같이 별 말 없이 자기 역할과 본분을 다하는 사람도 소수 있다. 이해의 수준이 높아 굳이 말이 필요없이 알아서 할 일을 다하는 사람인 것이다.
불위불우(不違不愚).. 어기지 않는다고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거나 자기 주장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 진정한 실천가는 말로 하지 않는다

 

위정(爲政) 10章 - 시기소이,관기소유,찰기소안
子曰: 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哉? 人焉?哉?
(자왈: 시기소이, 관기소유, 찰기소안. 인언수재? 인언수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하는 것을 보며, 그 이유를 보며, 그 편안한(즐거워 하는) 것을 살핀다면 사람들이 어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
* 焉: 어찌 언, 安: 편안할/즐거울 안, ?: 숨길 수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ranslated by James Legge)
The Master said, "See what a man does. "Mark his motives.
"Examine in what things he rests. "How can a man conceal his character?
How can a man conceal his character?"
[해설]
☞ 사람의 행동을 보고 판단하는 단계 視, 觀, 察
사람의 행동하는 것을 보고 판단하는 단계를 설명하고 있다. 보는 것에도 세단계가 있는데 1차로 살펴보는 것을 '시(視)'라 하고 2차로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을 '관(觀)'이라 하며, 3차로 마음속까지 살펴보는 것을 '찰(察)'이라 한다. 이 모두 적극적으로 보는 행위의 표현이고 보여지는 것을 그냥 본다는 의미로는 '견(見)'을 쓴다.
선(善)을 행하는 자는 군자가 되고 악(惡)을 행하는 자는 소인이 되는데, 비록 선을 행한다 하더라도 마음속에 선한 의도가 있지 않다면 군자라고 할 수 없다. '시기소이 관기소유(視其所以 觀其所由)'의 의미이다. 그런데 비록 그런 선한 의도로 행한다 하여도 진정으로 즐겁게 하는 마음이 아니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도도 변하게 되어 진실되지 않은 거짓된 행동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찰기소안(察其所安)'의 의미이다. 결국 본래의 마음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고 숨길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냥 표면적으로 행동하는 것만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속마음을 알려고 자세하게 살펴보게 된다. 그리하여 그 속마음을 살펴보는 것으로 판단의 전부를 삼는데, 사실은 그 속마음조차도 진정으로 즐거이 하는 것인지를 한 단계 더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속마음이 선한 기준을 준수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의도에서인지를 보고 최종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행동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특히 마지막 단계까지 살펴본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이에 대해 정자(程子)가 한가지 방법을 추천하고 있다. '在己者能知言窮理, 則能以此察人如聖人也 - 자신에게 있는 것을 知言하고 窮理한다면 이것으로써 남을 관찰하기를 성인과 같이 할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을 통해 말과 행동이 나오는 것을 살펴보아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연구한다면 성인들처럼 심도있는 관찰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위정(爲政) 1章 - 위정이덕(爲政以德)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 而衆星共之.(위정이덕, 비여북신거기소 이중성공지.)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정사를 덕으로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여러 별들이 그에게 향하는 것과 같다.
* 譬: 비유할 비, 辰: 때 신, 별 진(북극성을 뜻할 때는 신: 北辰)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ranslated by James Legge)
The Master said, "He who exercises government by means of his virtue may be compared to the north polar star, which keeps its place and all the stars turn towards it."
[해설]
☞ 무위(無爲)의 리더십 - 바른 중심잡기와 기준에 맞는 행동
주석에 보면, 정사(政)란 '바로잡다(正)'는 뜻으로 사람들의 바르지 못한 것들을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오늘날의 정치가 사람들의 바르지 못한 것들을 바로잡기는커녕 여론과 인기에만 영합하여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지도 않는 작태를 감안하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듯하다.
(政之爲言正也 所以正人之不正也)

덕(德)이라는 의미에 대해서는, '얻는다(得)'는 뜻으로 도(道)를 행하여 마음에 무언가 얻어서 잃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통상 덕(德)이라 하면 쌓거나 베푸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 '쌓고 베푼다'는 의미는 올바른 도(道)를 실행하여 마음에 뿌듯하게 채워진 것을 다시는 잃지 않도록 하고 계속 재활용하는 것이다.
(德之爲言得也 得於心而不失也)

북극성은 작은곰자리의 별로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의 중심으로 움직임이 없다.
그 북극성을 향하여 모든 별들이 배열되듯이, 정사(政)를 덕(德)으로 하면 별로 하는 일이 없어도 혼란한 천하질서가 바로잡히며 돌아온다는 것이다.
정치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도리에 맞게 실행하면 별로 펼침이 없어도 세상의 모든 일이 저절로 조화롭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하는 일이 없어도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무위(無爲)'의 단계가 된다.
그냥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무위자연(無爲自然)' 말속에는 덕(德)으로 바로잡은 이후에 이루어지는 '무위지치(無爲之治)',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전제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직에서도 정사를 펼치는 것과 같은 기준을 적용시킬 수 있다.
리더가 동분서주하며 바쁘게 움직이면서 구성원들을 이끌기보다는, 별로 움직이지 않아도 모든 구성원들이 리더를 향하며 자연스럽게 따르도록 하는 '무위(無爲)'의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평소 리더의 바른 중심잡기와 기준에 맞는 행동이 선행되어져야 함이 필수이다.

위정(爲政) 2章 -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시삼백, 일언이폐지, 왈 사무사)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시 삼백편을 한 마디의 말로 하면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는 것이다.
* 蔽: 가릴 폐, 덮을 폐 (隱蔽:은폐, 掩蔽:엄폐, 遮蔽:차폐),
* 邪: 간사할 사 (破邪顯正:파사현정 - 불교교의 三論玄義 출전)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ranslated by James Legge)
The Master said, "In the Book of Poetry are three hundred pieces, but the design of them all may be embraced in one sentence 'Having no depraved thoughts.'"
* embrace: 껴안다, 수용하다, embrace Buddhism: 불교에 귀의하다
* deprave: 타락하게 하다
[해설]
☞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 함축된 표현과 요점정리의 의미
유명한 '일언폐지(一言蔽之)'의 출처로써, '한마디로 잘라 말하다', '한마디로 개괄하다' 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본래의 담긴 뜻을 논어를 통해 이해하여 본다.
'시(詩)'라 함은 고대의 3대 경전이라 하는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주역)》의 하나인 《시경(詩經)》을 말하는데, 춘추 시대의 민요를 중심으로 하여 모은 총 3,000여편 중에서 공자가 311편으로 정리한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시집이다.
시경의 3백여 편에는 선(善)과 악(惡)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 있는데, 사람들의 착한 마음을 감동시켜 분발하게 하기 위해 선(善)을 강조하고 있고, 사람들의 방탕한 마음을 징계하기 위해 악(惡)을 사례로 보여 주고 있다.
그리하여 시경을 통해 사람들이 바른 성품을 갖도록 가르치는 교범의 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시(詩)라는 함축적 형식을 빌어 많은 내용을 다 덮을 수 있게 한 것이라 하여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라는 말을 쓴 것이다.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란 말을 다른 한편에서 보면, 요점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역으로 생각해서 요점을 안다는 것은 요약할 수 있다는 것이고, 요약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해박하게 다 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는 말에는 모든 것을 다 알아야만 가능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생각함에 간사함이 없다(思無邪)'는 것은 바로 '성(誠)'을 말하는 것이다.
시경의 시(詩)에는 사특함이 없는 진실된 삶의 규범이 담겨 있다는 의미가 되겠다.
그러한 시경을 암송하고 체득화하는 것이 당시 학자들과 공부하는 사람들의 기본이었다.
오늘날의 시(詩)가 개인의 자유로운 감정이나 생각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고대의 시(詩)는 사회집단의 가르침을 위한 함축된 이성의 표현이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 《시경(詩經)》은 '풍(風),아(雅),송(頌)' 셋으로 크게 분류되는데, '아(雅)'가 '대아(大雅)', '소아(小雅)'로 나뉘어 전해진다.
'풍(國風이라고도 함)' 은 여러 나라의 민요로 주로 남녀간의 정과 이별을 다룬 내용이 많고, '아(雅)'는 공식 연회에서 쓰는 의식가(儀式歌)이며, '송(頌)'은 종묘의 제사에서 쓰는 악시(樂詩)이다.

위정(爲政) 3章 - 도지이덕 제지이례(道之以德 齊之以禮)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정사로써 인도하고 형벌로써 통일시키면 백성들이 면피는 하겠지만 부끄러워함이 없을 것이다.
덕으로써 인도하며 예로써 통일시키면 (백성들이) 부끄러워함이 있고 (善에) 이르게 될 것이다.
* 且: 또 차, 구차할 차(苟且:구차), 格: 격식 격, 이를(至) 격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ranslated by James Legge)
The Master said, "If the people be led by laws, and uniformity sought to be given them by punishments, they will try to avoid the punishment, but have no sense of shame.
"If they be led by virtue, and uniformity sought to be given them by the rules of propriety, they will have the sense of shame, and moreover will become good."
[해설]
☞ 규율 보다는 덕과 예로써, 품격을 높이는 리더십
정(政)은 법제(法制)와 금령(禁令)을 말하고, 제(齊)는 '하나로 정하다', 즉 '통일시키다'는 뜻이다.
법률과 규제로 이끌어 가는데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형벌로써 통일시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형벌을 면하려고 따르기는 하나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게 된다는 의미이다.
비록 감히 나쁜 짓을 하지는 못하지만 나쁜 짓을 하려는 마음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진정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덕(德)으로써 이끌고 제도와 품절인 예(禮)로써 통일시키면 사람들이 스스로 잘잘못을 알아서 선(善)하지 못함을 부끄러워 하게 되며 선(善)에 이르기 위해 바르지 못한 마음도 바로잡게 된다는 것이다.
자발적이고 진심 어린 팔로워십(Followership)이 도출되는 이상적인 리더십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정치에 비유하자면, 법령은 정치를 하기 위한 도구가 되고 형벌은 이를 보조하기 위한 법이 되나 덕과 예는 정치를 내는 근본이므로 결국 정치란 덕과 예로 하는 것이지 제도와 규정만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즉 통제를 통한 차원 낮은 정치가 아니라 집단과 개인의 품격을 높이는 차원 높은 정치가 펼쳐져야 한다.
조직관리도 마찬가지이다.

위정(爲政) 4章 -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열 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하였고,
마흔 살에 사리에 의혹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
일흔 살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넘지 않았다.
* 踰: 넘을 유, 矩: 곡척 구, 법도 구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ranslated by James Legge)
The Master said,
"At fifteen, I had my mind bent on learning. At thirty, I stood firm. At forty, I had no doubts. At fifty, I knew the decrees of Heaven. At sixty, my ear was an obedient organ for the reception of truth. At seventy, I could follow what my heart desired, without transgressing what was right."
* bent: 굽은,기호,숙이다, decree: 법령,칙령, obedient: 말을 잘 듣는, 순종하는, transgress: 벗어나다,어기다,범하다
[해설]
☞ 경지는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노력하여 단계를 거쳐야 한다.
학문에 뜻을 두고 정진하는 과정을 인생에 견주어 설명하고 있는 유명한 구절이다.
예전에는 15세가 되면 대학에 들어갔다. 오늘날의 대학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수준별 경서를 칭하는 《소학(小學)》과 《대학(大學)》의 《대학(大學)》을 말한다.
대체로 8세~13세가 되면 《소학(小學)》에 들어가고 15세~20세가 되면 《대학(大學)》에 들어가는 것이다.
《소학(小學)》과 《대학(大學)》을 익히고 공부한다는 뜻이다.

마음이 가는 것을 '뜻(志:지)'이라고 하는데, 학문에 마음을 두었다는 뜻이다.
마음을 둔다는 것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하기 싫어하는 마음 자체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즉, 꾀를 부린다거나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섰을 때, '마음을 둔다'는 표현을 한다.
여기서의 '학(學)'이란 대학에서 가르치는 도(道)를 말한다.
이미 15세부터 고차원의 자기 수양서이자 논리 사상서인 《대학(大學)》을 공부한 옛날 사람들의 수준을 오늘날과 비교해 보면, 옛 사람들의 정신적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가늠해 볼 수 있다.

30세가 되면 '이립(而立)'으로 자기를 세우는 단계인데, 스스로 세워야 지키려는 마음이 확고해져서 세우기 위한 뜻을 두는 데 힘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 계획만 하다가 세월을 허비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40세가 되면 '불혹(不惑)'으로 사물의 당연한 것에 대하여 의혹을 품지 않는 단계인데, 아는 것이 분명하다보니 쓸데 없는 소모적인 논쟁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50세가 되면 '지천명(知天命)'으로 사물의 당연한 도리인 '소이연(所以然)'을 아는 단계인데, 사물의 도리를 알게 되면 의혹에 빠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궁극적으로 천지의 도(道)가 사물에 스며든 이치를 간파하게 된다는 것이다.
60세가 되면 '이순(耳順)'으로 소리가 귀로 들어오면 마음이 통하여 상충되거나 배치됨이 없는 단계가 되는데, 이미 천명을 아는 단계를 지났으니 아는 수준이 극에 달하여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경지에 이른 셈이다.
70세가 되면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로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천명을 알고 순리에 따르다 보니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 편안하게 행하여 저절로 도리에 맞게 되는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된다.

공자의 이 말씀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저절로 단계가 높아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을 함에 따라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수준이 향상되어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나이만 먹으면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정자(程子)의 지적처럼, 공자는 나면서부터 깨달은 분인데도 학문으로 말미암아 각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신 것은 후세의 보통수준의 사람들에게 권면(勸勉: 알아듣고 타이름)하게 하여 학문에 증진토록 하신 것이다.

위 구절을 쉽게 해석하자면, 이립(而立)은 스스로 도(道)에 서는 것이고, 불혹(不惑)은 의심하는 바가 없는 것이며, 지천명(知天命)은 이(理)를 궁구하고 성품을 다하는 것이며, 이순(耳順)은 듣는 것을 모두 깨닫는 것이다.
또한 마음에 하고자 하는 것을 좇아도 법도에 넘지 않는다는 것으로 힘쓰지 않아도 도(道)에 맞는 것이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이다.

* 《대학(大學)》은 유가사서의 중요한 경서로써 본래 《예기(禮記)》라는 책의 제42편만을 떼내어 송나라의 사마광이라는 사람이 처음 《대학광의(大學廣義)》를 만들었는데, 그 후 주자(朱子)가 《대학장구(大學章句)》라고 존숭하면서 세상에 퍼졌다.
3강령과 8조목으로 정리되었는데, 명명덕(明明德: 명덕을 밝히는 일), 신민(新民: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 지지선(止至善: 지선에 머무르는 일) 등을 3강령(三綱領)이라 하고,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등을 8조목(八條目)이라 하여 유교의 윤곽을 제시한 경서이다.

위정(爲政) 5章 - 효,무위(孝,無違)
孟懿子問孝. 子曰: 無違.
樊遲御, 子告之曰: 孟孫問孝於我, 我對曰 無違.
樊遲曰: 何謂也? 子曰: 生, 事之以禮; 死, 葬之以禮, 祭之以禮.
(맹의자문효. 자왈: 무위.
번지어, 자고지왈: 맹손문효어아, 아대왈 무위.
번지왈: 하위야? 자왈: 생, 사지이례; 사, 장지이례, 제지이례.)
맹의자가 효를 묻자, 공자께서 "어김이 없어야 한다"고 대답하셨다.
번지가 수레를 몰고 있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손씨가 나에게 효를 묻기에 내가 '어김이 없어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번지가 "무슨 말씀입니까?" 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살아 계실 적에는 예로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 장사 지내고 예로 제사 지내는 것이다."
* 孟懿子(맹의자): 魯나라 대부 중손씨, 이름(名)은 何忌(하기)
樊遲(번지): 名(이름)은 須(수), 공자의 수레를 몬 제자, 事: 섬길 사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ranslated by James Legge)
Mang I asked what filial piety was. The Master said, "It's not being disobedient."
Soon after, as Fan Ch'ih was driving him, the Master told him, saying, "Mang-sun asked me what filial piety was, and I answered him,-'not being disobedient.'"
Fan Ch'ih said, "What did you mean?" The Master replied, "That parents, when alive, be served according to propriety; that, when dead, they should be buried according to propriety; and that they should be sacrificed to according to propriety."
*disobedient: 반항하는,거역하는, propriety: 예의
[해설]
☞ 孝란 한결같이 도리와 분수에 맞게 하는 것이다
맹의자의 질문을 통해 '孝(효)'에 있어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치는 내용이다.
맹의자는 춘추시대 공자가 살던 노(魯)나라의 대부로서 권문세가로 위세를 떨치던 사람인데 그런 맹의자가 공자께 부모에 효도하는 도리를 여쭈었다.
공자께서는 맹의자의 권세 높음을 미루어 보아 효(孝)의 본질을 저해할까 우려하여 '無違(무위)'라는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위정(爲政)편 1장에서 '無爲(무위)'에 대해 언급하였다.
도리에 맞게 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을 뜻하는데 '無違(무위)' 또한 도리에 맞게 어김이 없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어김이 없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지 않음을 뜻하는데, 여기서 도리에 어긋나지 않음은 한도 끝도 없이 무작정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즉 분수에 맞게 하라는 것이다.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거나 할 수 없는데도 하는 것 등은 이미 도리를 벗어난 행위로 진정한 효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를 위한답시고 도리에 어긋남에도 무조건 행하는 것은 효가 아니라는 말이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 '禮(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마찬가지로 '禮(예)'로써 장사지내고 또한 그 '禮(예)'로써 제사를 지내라는 것은, 효도의 처음과 끝을 항상 '禮(예)'라는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한결같이 하라는 것이다.
'無違(무위)'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에는 이렇듯 깊은 뜻이 들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대목이다.

오늘날에도 부모상을 지나치게 과하게 한다거나 묘소를 과대하게 치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공자께서 지적하신 '無違(무위)'에 어긋나는 불효의 행위를 한 것이다.
또한 부모에 효도한다고 자기의 역할과 본분까지 망각하고 부모에게 달려가는 것도 과연 진정한 효도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비단 효 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이나 분야에서도 똑 같다.
무슨 일이든 도리나 분수에 맞게 한결같이 해야지 최선을 다한다는 미명하에 단발성으로 과도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학이(學而) 11章 - 관기지 관기행(觀其志 觀其行)
子曰: 父在,觀其志; 父沒,觀其行; 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
(부재,관기지; 부몰,관기행; 삼년무개어부지도,가위효의)
공자께서 말씀하시되,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그분의 뜻을 살피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는 그분의 행실을 살핀다.
삼년 넘도록 아버지의 도를 고치지 않아야 가히 효라 이를만 하다.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ranslated by James Legge)
The Master said, "While a man's father is alive, look at the bent of his will;
when his father is dead, look at his conduct. If for three years he does not alter from the way of his father, he may be called filial."
* filial: (부모에 대한)자식의, be filiar: 효성스럽다
[해설]
☞ 팔로워의 자세, 리더의 뜻을 살펴 일하고 후에 판단하여 개선한다.
아버지가 살아생전에는 아버지 하시는 일을 거스를 수 없기에 어찌할 수 없이 하시는 일의 속뜻이 무엇인지 살피는데만 최선을 다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비로소 그 분의 행적에 대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아버지의 뜻이나 행적이 옳다면 평생토록 수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나, 행실이나 업적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 3년 정도는 아버지가 하신 일을 수정하면 안 된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효(孝)의 발로이니 차마 3년 정도는 그대로 따르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는 것이다.
만약 아버지 하신 일이 너무 극악하여 당장 수정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라면 3년이 아니라 바로 고쳐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차마 고치지 못하는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 효를 행하는 자식의 도리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고치지 않아도 될 일임에도 바로잡는 것이 선(善)이라고 생각하여 고치는데 앞장선다면 이는 효(孝)라고 볼 수 없다는 의미이다. 또한 고친다는 것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위치나 입장이 되었을 때만 가능한 것은 물론이다.
논어나 동양철학에서 효(孝)를 이야기할 때 주로 3년이라는 기간이 설정된다. 부모상(喪)에 3년을 애도하는 것도 사람으로서의 자식된 도리가 최소한 3년을 지속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인데,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의 극진한 보살핌이 3년 이상 되어야만 비로소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됨을 상징하기 때문이라 한다.
조직이나 사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리더이자 전임자의 리더십이나 펼쳤던 일들이 평가해보니 바로 개선해야 하는 것으로 판명될 때, 전임자 시절 그를 따라서 그 일들에 참여했던 후임자의 태도는 즉시 개선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개선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그것이 卽개선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긴박한 일이라면 모르되, 자신이 참여했던 전임자의 업적을 세세히 살펴보고 과오를 평가해보는 최소한의 기간은 유지해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한다. 그것은 리더십(leadership)을 따르는 팔로워(Follower)로서, 리더의 뜻을 살피면서 일에 매진하고 자신이 리더가 되었을 때 비로소 판단하여 개선점을 찾아 나가는 것으로, 조직의 영속성을 이루어가는 한 일원으로서의 취해야할 태도가 아닐런지. 바로 팔로워십(Followership)의 한 형태인 것이다.

 

학이(學而) 12章 - 예지용 화위귀(禮之用 和爲貴)
有子曰: 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斯爲美, 小大由之(예지용, 화위귀. 선왕지도사위미, 소대유지)
有所不行,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유소불행, 지화이화, 불이례절지, 역불가행야)
유자가 말하길,
예의 쓰임은 和가 귀함이 되니, 선왕의 도는 이것을 아름답게 여긴다.
그리하여 크고 작은 일이 모두 이것에 말미암는다.
행하지 못할 것이 있으니, 和를 알아서 和만하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행할 수 없는 것이다.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ranslated by James Legge)
The philosopher Yu said, "In practicing the rules of propriety, a natural ease is to be prized. In the ways prescribed by the ancient kings, this is the excellent quality, and in things small and great we follow them.
"Yet it is not to be observed in all cases. If one, knowing how such ease should be prized, manifests it, without regulating it by the rules of propriety, this likewise is not to be done."
* natural ease: 화(和), rules of propriety: 예(禮), prize: 소중히여기다,
manifest: 나타내다, likewise: 똑같이, 마찬가지로
[해설]
☞ 예지용 화위귀(禮之用 和爲貴), 자유 속의 절제, 절제 속의 조화, 조화로운 자유
"예(禮)의 쓰임에는 화(和)가 귀하다." 주석에는 '예(禮)'란 '천리(天理)의 절문(節文)이며 인사(人事)의 의칙(儀則)'이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이는 자연의 이치에 따른 예절에 관한 규정이며 인간사회에서의 의식과 규칙이라는 뜻이다. 이 구절은 박경리 선생이 대하소설 《토지(土地)》에 인용하고 있는데, 1부 2권에 김훈장이 조준구와 술상을 마주하며 세태를 한탄하는 장면에서 '천리의 절문을 어려워 아니하고 인사의 예칙을 저버리니..' 라는 대목이다. 《논어(論語)》의 주석이 인용될 정도로 장편소설《토지(土地)》의 수준이 만만치가 않음을 보여 준다.
원래 '예(禮)'라는 것은 대체로 몸가짐을 엄숙하게 함으로부터 시작되므로 너무 치우치게 되면 딱딱하게 되고 점차 일상에서의 생활과도 괴리가 생긴다. 다함께 어울려 사는 현실에서는 예절을 지키려는 마음에 조바심과 성급함이 앞서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착하고 차분하게 성급하지 않도록 행동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화(和)'에 해당하는 것이며 예(禮)가 쓰일(用) 때에는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에 귀중하다고 하는 것이다.
'화(和)'는 종용(從容)하여 급박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되어 있는데, '종용(從容)'이란 '조용하다'의 원말로써 침착하고 덤비지 않는다는 뜻이다. '화(和)'가 지나치면 이른 바 유유자적(悠悠自適)함에 이르게 되는데, 중국에서 흔히 말하는 '만만디(慢慢的)'란 정신과 유사하다. 행동이나 일의 진척이 느리게 진행되는 모습을 일컫는 '만만디'도 '화(和)'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생겨난 표현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화(和)'만 강조하여 유유자적(悠悠自適)함에 빠져 희희낙락(喜喜樂樂)하다 보면 점점 나태해지고 방탕해지므로 예(禮)로써 적절하게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강(剛)함과 유(柔)함이 적절하게 어우러져야 한다는 이치와 같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게 된다는 내용이다. 결국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라는 뜻이 되겠다. 조화 속의 절제이고 절제된 조화이다.
조직이나 집단 속에서도 규칙을 따르고 규정대로 하다보면 상호간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각박해지게 된다. 그래서 한 템포 쉬어 가는 조화로운 분위기가 필요한 지도 모르겠지만, 한편으로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한없이 느슨해질 우려가 따르기도 한다. 바로 적절한 통제가 필요한 이유인 것이다.

 

학이(學而) 13章 - 인불실기친 역가종야(因不失其親, 亦可宗也)
有子曰: 信近於義, 言可復也; 恭近於禮, 遠恥辱也; 因不失其親, 亦可宗也.
(신근어의, 언가복야; 공근어례, 원치욕야; 인불실기친, 역가종야)
유자가 말하길,
약속이 의에 가까우면 말을 가히 실천할 수 있으며, 공손함이 예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으며, 의지한 자가 그 친함을 잃지 않으면 또한 가히 종주로 삼을 수 있다.
* 信은 약속, 復은 실천, 因은 의지하다(주인삼다), 宗은 主와 같다.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ranslated by James Legge)
The philosopher Yu said,
"When agreements are made according to what is right, what is spoken can be made good.
When respect is shown according to what is proper, one keeps far from shame and disgrace.
When the parties upon whom a man leans are proper persons to be intimate with, he can make them his guides and masters."
* be intimate with: ~와 친하다
[해설]
☞ 팔로워십(Followship), 한 번 정한 마음에는 끝까지 충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본 장에서는 사람의 언행과 관계에 있어서의 도리에 관한 내용이다. 약속이 의(義)에 가깝다는 것은 이치에 합당하면 반드시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약속을 할 때는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약속이 실천 가능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한 도리에 맞거나 사리에 어긋나지 않아야함을 말하는 것이다.
남에게 공손하게 대하되 지나칠 정도로 지극하게 해도 예의와 도리에 맞게 한다면 그로 인한 치욕스런 경우는 당하지 않는다. 치욕스런 경우라 하면 공손하게 한다고 하대(下待) 당한다거나 아첨으로 오해를 산다거나 하는 경우를 말한다. 결국 이 내용은 남에게 공손함이 아부(阿附)로 비춰지지 않게 되는 기준을 말해주는 것인데, 도리와 이치에 어긋나지 않도록 예의와 절도에 맞게 하면 된다는 뜻이다.
사람이 누군가를 주인으로 삼는다는 것은, 어른이나 상사를 가식이 아닌 충심으로 모신다는 의미이다. 어른이란 집안이나 주변의 연장자, 선배, 존경하는 인물 등을 포괄한다. 친(親)하다는 것은 자기가 믿고 따르며 의지할만하다는 뜻이다. 인생이나 사회에서의 어른이나 직장에서의 상사를 모시는 데 있어서, 자기가 충심으로 친하게 여길 만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친하려는 마음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의지와 마음에서 충심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모심을 지킬 수 있어야만 나중에 후회와 회한을 남기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구차하게 자리나 현실에 연연하듯 하지 않았다는 것과 스스로의 마음에 지조를 잃지 않았다는 것으로 당당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학이(學而) 14章 - 식무구포 거무구안(食無求飽, 居無求安)
子曰: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군자식무구포, 거무구안, 민어사이신어언, 취유도이정언, 가위호학야이)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는 먹음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거처할 때에는 편안함을 구하지 않으며,일을 민첩하게 하고 말을 삼가며, 도가 있는 이에게 찾아가서 바로잡는다면 가히 학문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ranslated by James Legge)
The Master said, "He who aims to be a man of complete virtue in his food does not seek to gratify his appetite, nor in his dwelling place does he seek the appliances of ease;
he is earnest in what he is doing, and careful in his speech;
he frequents the company of men of principle that he may be rectified:
-such a person may be said indeed to love to learn."
* gratify: 충족(만족)시키다, dwell: 거주하다, earnest: 진지한, rectify: 바로잡다
[해설]
☞ 목표달성을 위해 먹고 쉬는 시간까지도 아낄줄 아는 노력

군자는 배부르게 먹지 않고 편안한 곳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는 먹고 거처하는 데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군자가 추구하는 바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먹고 거처하는데 미처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를 군자가 될 정도의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늘 가난한 듯 일부러 적게 먹고 누추한 곳을 찾아서 고행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그러한 행동이 오히려 자신과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민첩하게 일한다'는 의미는 잽싸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모자라는 데 힘쓴다는 뜻이다. '말을 삼간다'는 의미도 평소 말을 조심해서 한다는 것 보다는 말을 할 여유가 있어도 말하는데 쓰는 시간과 노력을 뜻한 바를 이루는데 쓰라는 의미이다. 즉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일하고 말하는 시간과 여유까지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을 중심으로 한 노력과 정성에도 불구하고, 본인 판단이 필요한 경우에 비록 그것이 옳다고 여겨지더라도 도(道)가 있는 사람을 찾아가 물어서 바로잡는다면 그런 사람은 학문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 여기서 '도(道)'가 뜻하는 의미는 사물의 당연한 이치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하여야 할 도리를 말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옳다고 여겨도 도리에 맞는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본 장과 관련하여 후대의 유학자들이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주장에 자주 비유하고 있다. 양주는 '위아설(爲我說)'을 주장한 사상가로 자신의 판단을 중요시한 사람이고, 반대로 묵적(묵자라고도 불림)은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여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하여야 함을 강조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맹자나 정자 등에게 비판을 받게 되는데, 양주가 자신만을 위하니 군주가 없는 것(無君)과 같고 묵적은 똑같이 사랑하니 아버지가 없는 것(無父)과 같다는 것으로 도리에 어긋나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유가사상에서는 사람간의 차이를 인정하는데 바로 계급적 차별의식이 아니라 관계적 차이의식이다. 이는 사회생활이나 조직생활에서의 필연적인 차등을 두는 것으로써 개인만을 위한 사회와 조직이 아니라 관계하는 사회이고 조직으로 여겨지기 때문인데, 그러한 차이에 대한 인정으로 실천적 도리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관계적 차이 개념에서 나온 군주에 대한 충(忠)과 부모에 대한 효(孝)를 무시했다 하여 양주와 묵적이 호되게 비판받은 것이다.

 

학이(學而) 15章 - 절차(切磋) 탁마(琢磨)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자공왈: 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
자왈: 가야. 미야빈이낙, 부이호례자야.
자공왈: 시운: 여절여차, 여탁여마. 기사지위여?
자왈: 사야, 시가여언시이의! 고제왕이지내자.)
자공이 말하길,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아니하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떠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가하다.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자만 못하다
자공이 말하길, 시에 이르길 '절단해 놓은 듯하며, 간 듯하며, 쪼은 듯하며, 간 듯하다 '고 하였으니, 이것을 말함일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사는 비로소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겠다! 지나간 것을 말해주자 올 것을 아는구나!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ranslated by James Legge)
Tsze-kung said "What do you pronounce concerning the poor man who yet does not flatter, and the rich man who is not proud?" The Master replied, "They will do; but they are not equal to him, who, though poor, is yet cheerful, and to him, who, though rich, loves the rules of propriety."
Tsze-kung replied,
"It is said in the Book of Poetry, 'As you cut and then file, as you carve and then polish.'-The meaning is the same, I apprehend, as that which you have just expressed."
The Master said, "With one like Ts'ze, I can begin to talk about the odes. I told him one point, and he knew its proper sequence."
* flatter:아첨하다, carve:조각하다, polish:광택내다, ode:시(頌)
[해설]
☞ 절차(切磋) 탁마(琢磨), 갈고 닦아서 만족하지 말고 계속 증진하라.
자공은 원래 가난하였지만 재화를 잘 증식시켜 부유하게 되었으며 항상 지조를 지키는데 노력한 공자의 제자이다. 그런 자공이 자신의 처신에 빗대어 스승에게 '가난해도 아첨하고 빌붙지 않으며 부유해도 교만해지지 않음'을 자랑스럽게 여쭈었으나, 돌아온 답은 '가난해도 즐거워하며 부유해도 예(禮)를 좋아함만 못하다'라며 한 차원 더 높은 증진을 주문받고 있다.
자공이 이미 행동으로 옮겨서 실천하고 있는 현재의 수준에서 만족하지 말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을 공자께서 깨우쳐 주는 장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달성 가능한 목표를 이루어 내는 순간 그 곳에서 안주하게 되는데, 적어도 군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목표에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은 이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즐거워 할 줄 안다는 것은 마음이 평온하고 몸이 편안하여 가난함을 잊은 수준이고 예(禮)를 좋아한다는 것은 절제와 지조를 알아 부유한 정도를 생각하지 못하는 수준을 말한다. 보통사람들은 빈부의 현상에만 집착하여 스스로를 지조있게 가꾸지 못한다. 그래서 아첨하고 교만하지 않는 것만 하더라도 스스로 지조있다고 만족하게 되나, 그것은 빈부라는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며 그 수준에서 공자가 '가(可)하다' 라고 한 것이다. 즉 그런 대로 괜찮을 뿐 아직 미진한 바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의 증진에 대한 일침을 가한 것이다.
'절차(切磋)'는 뼈와 뿔을 가공하는 사람이 재료를 자른 다음 다시 그것을 가는 것을 말하고, '탁마(琢磨)'는 옥과 보석을 가공하는 사람이 재료를 쪼아 놓은 다음 다시 그것을 가는 것을 말하는데, 이미 한 차례 가공하였지만 더욱 정밀하게 가공하여 정밀한 수준을 극대화시킨다는 의미이다. 자공은 《시경(詩經)》의 유명한 '절차(切磋), 탁마(琢磨)'를 인용하여 자신이 좀 더 수준 높은 경지를 위한 노력이 부족함과 더욱 갈고 닦음에 증진해야 함을 비유하였고, 공자께서는 비로소 자공의 겸손한 태도와 배우려는 자세를 칭찬하고 있는 것이다.

☞ 우리 한자음과 중국 백화문 발음의 차이
중국 고대 경전을 보다보면 우리 한자음과 현대 중국 백화문 발음간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경우가 많다. 《논어(論語)》 뿐만 아니라 《맹자(孟子)》도 그렇고.. 과연 고대 경전이 우리 한자음과 더 가까웠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한자음과의 유사성이 돋보인다.
본 장에서도 본문을 풀이 한 주해(註解)에 보면 '樂, 音洛' 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樂[nak]' 음을 '洛[nak]'으로 발음하라는 해석인데 바로 우리 한자음이다. 중국 백화문으로는 '樂[lè]'과 '洛[Luò]'간의 유사성이 전혀 없다. 오히려 우리 한자음 발음이 중국 고전을 읽을 때 더 가까운 것이다.

 

학이(學而) 16章 - 불환인지불기지(不患人之不己知)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자왈: 불환인지불기지, 환불지인야.)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않을 것을 근심해야 한다.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ranslated by James Legge)
The Master said, "I will not be afflicted at men's not knowing me;
I will be afflicted that I do not know men."
* afflict: 괴롭히다
[해설]
☞ '알아 준다'는 진정한 의미, 외면이 아닌 내면의 이해
논어 학이편의 마지막 장으로써 잘 알려져 있는 유명한 구절이나,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즉 '알아준다'는 의미에 대해 약간의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를 염려한다. 내가 쏟은 정성과 노력, 나의 신분, 나의 학벌, 나의 존재가치 等.. 어떻게 보면 현대사회에서의 자기PR 시대에 맞게 남에게 나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자기 것을 못 지키는 게 오히려 어리석거나 열등하게 조차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다보니, 공자의 이 말씀은 와 닿기가 쉽지 않은 듯 보인다.
그래서 학이편 첫 장에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라 하여,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 라고 했나 보다. 군자라고 할 만큼 알아 주지 않는데 대한 보통사람으로서의 인내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는 뜻인 것이다.
그런데 군자는 남이 나를 알아주기 보다는 내가 남을 알지 못할까를 두려워한다고 했다. 군자라는 존재는 자신에게서 모든 것의 기준을 찾는다. 즉 자신의 공부의 수준이나 자신의 내면의 깊이나 자신의 수양 정도 등에서 세상에 대응하는 기준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의 판단이나 생각에 의거한 기준에 자신을 대비하여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군자는 남을 알지 못할까를 염려한다. 남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남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처지나 공과를 알아주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남의 옳고 그르고 간사하고 정직하고 등에 대해 분별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 사람의 입장과 처지가 아닌 그 사람의 수준과 속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할까를 염려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군자는 대단히 사리분별력이 뛰어난 부지런한 존재라 하겠다. 그냥 이해심 넓은 사람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명확하게 판단하여 적절하게 처신하는 치밀함을 갖춘 존재인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한 끊임없는 연마와 증진은 필수적일 것일테고...
학이(學而) 6장 - 입즉효출즉제(入卽孝出卽弟)
글로벌 시대에도 通하는 인문학 최고봉인 《논어(論語)》 study 6회차.
금번 학이(學而)편 6章의 키워드는 '입즉효,출즉제,근이신(入則孝,出則弟,謹而信)'입니다.
《논어(論語)》학이(學而) 6章 - Confucian Analects (Translated by James Legge)
子曰: 弟子 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제자 입즉효, 출즉제, 근이신, 범애중, 이친인. 행유여력, 즉이학문)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제자들은 들어간 즉 효도하고, 나오면 공손해야 하며, 삼가 하고 미더워야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고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되, 실행하고 남은 힘이 있으면 학문을 해야 한다.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he Master said, "A youth, when at home, should be filial, and, abroad, respectful to his elders. He should be earnest and truthful. He should overflow in love to all, and cultivate the friendship of the good. When he has time and opportunity, after the performance of these things, he should employ them in polite studies."
* filial: (부모에 대한)자식의, be filiar: 효성스럽다, polite study: 고상한 학문
[해설]
자기 직분에 충실하고, 여유가 있을 때 학문을 하라!
'입즉효, 출즉제(入卽孝, 出卽弟)' 집안에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오면 공손하라.
밖이라 함은 오늘날 사회생활에 비견될 수 있다.
학생이라면 학교생활, 직장인이라면 직장생활, 기타 타인과 어우러지는 대인관계나 집단에서의 생활들이 연속되는 곳이다.
'제(弟)'라는 뜻은 '연장자나 상사를 섬긴다'는 의미인데, '섬기다(事)'는 '받들어 모시다', '(알아서)일을 해 드리다' 등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현대의 리더십(leadership)에 대응하는 팔로워십(followership)과 유사하나 '모신다'는 예의범절이 추가된다는 의미에서 차이가 있다.
'근이신(謹而信)'은 현대인이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사회생활에서의 최고 실천덕목이다.
'근(謹)'은 '행실이 떳떳하고 한결같음'을 뜻하고, '신(信)'은 '말에 성실함이 있음'을 뜻한다.
즉 언행(言行)이 성실하고 한결같아서 믿음이 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동료들과 사람들을 대할 때는 인정으로 대하고 어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그렇게 열심히 행한 다음에 여유가 생기면 학문을 하라는 것이다.
여기서의 학문은 자기분야의 단순한 전문지식 쌓기가 아니라 일종의 정신수양을 바탕으로 한 실천철학 측면의 공부를 의미한다. 영어식 표현으로 'polite studies(고상한 학문)', 예의범절·에티켓 보다도 더 상위개념의 자기수양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실천철학을 의미한다.
이를 '당위지학(當爲之學)'이라고 표현하는데 바로 이 학문을 공부하라는 것이다.
'학문(學文)'에는 '사실지학(事實之學)'과 '당위지학(當爲之學)'이 있다.
우리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한다.
이 지식은 사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로부터 인간행위에 관한 올바른 이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내용을 포괄한다.
서양의 물리학, 생물학, 경제학, 역사학, 수학 등이나 동양의 천문, 지리, 의술, 명리 등과 함께 일상적이지 않은 초자연현상에 대한 연구들도 모두 어떤 사실을 정확히 알려고 하는 데서부터 발전된 것들인데 이들은 모두 알고자 하는 그 '사실(事實)'을 중심으로 학문체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와 같이 '사실'을 중심으로 학문체계가 형성된 것들을 '사실지학(事實之學)'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지학(事實之學)'과는 전혀 다르게 인간의 '당위(當爲: 마땅히 그렇게 행동해야 함)'를 중시하여 그 당위의 내용을 제시하며 당위의 근거를 밝히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를 탐구하는 것 등에 관한 학문체계를 '당위지학(當爲之學)'이라고 한다.
'당위지학'은 한마디로 사람과 사물의 관계와 이치를 깨달아 실천으로 옮기게 하는 실천철학의 근간인 '도리(道理)'를 가르치는 학문이다.
자신의 역할과 직분을 다하기 위해서는 '사실지학'이 필요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지식은 일하면서 즉시즉시 습득해야 한다. 이는 여유가 있을 때 공부하는 '당위지학'과는 다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하면서 지식을 익히는 것은 평소에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여유가 있을 때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을 통한 자신의 가치있는 삶을 가꾸는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본 장에서는 사회인으로서의 역할과 도리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자신의 역할과 직분을 다하고 난 후에 여유가 있거든 학문을 하라는 것인데, 자신의 직분을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공부에만 전념한다면 흔히 말하는 '돈 안되는 일'만 하는 셈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입지나 위상이 위태롭게 된느 결과를 초래한다.
반대로 여유가 생기는데도 공부하지 않으면 자신의 일에 대한 사리판단과 분별력을 기를 수 없게 되어 사사로이 행동하게 되고 종래에는 자신을 잘못된 길로 빠지게 하며 자신의 인생을 비루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공부는 필수인 것이다.

우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자.
그리고 시간이 허락되면 열심히 공부하자.

학이(學而) 7장 - 현현역색(賢賢易色)
글로벌 시대에도 通하는 인문학 최고봉인 《논어(論語)》 study 7회차.
금번 학이(學而)편 7章의 키워드는 '입니다.
《논어(論語)》학이(學而) 7章 - Confucian Analects (Translated by James Legge)
子夏曰: 賢賢易色, 事父母能竭其力, 事君能致其身, 與朋友交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
(현현역색, 사부모능갈기력, 사군능치기신, 여붕우교언이유신.
수왈미학, 오필위지학의.)
자하가 말하길,
"어진 이를 어질게 여김에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꿔 하며,
부모를 섬김에 능히 그 힘을 다하며, 군왕을 섬기되 그 몸을 다 바치며,
벗과 더불어 사귐에 말에 성실함이 있으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가 배웠다고 이를 것이다."
* 자하(子夏): 공자 제자, 성은 복(卜), 이름은 상(商)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sze-hsia said, "If a man withdraws his mind from the love of beauty, and applies it as sincerely to the love of the virtuous;
if, in serving his parents, he can exert his utmost strength;
if, in serving his prince, he can devote his life;
if, in his intercourse with his friends, his words are sincere:
- although men say that he has not learned, I will certainly say that he has.
* withdraw: 철회하다, virtuous: 고결한, exert: 노력,분투하다
[해설]
☞ 현현역색(賢賢易色), 정당하고 바른 일에는 가리지 말고 본능적으로 대한다.
'현현역색(賢賢易色)'이란 어진 사람을 보게 되면 어질게 여겨야 하는데, 마치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와 진심되게 하듯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누구나 어여쁜 여인을 보면 좋아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난다. 본능적인 반응인 것이다. 하지만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은 여색을 밝히는 것과는 다르다. 밝힌다고 하면 도가 지나쳐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서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부모를 모시는 데에는 온 힘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이며, 군왕을 받드는 데는 온몸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를 모시는데 힘을 아끼는 것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니, 진정한 효도가 아니다. 그리고 군왕을 모시듯 오늘날 조직이나 집단에서 구성원이 되어 상사나 조직을 위해 일하는 입장에서는 자기 몸을 다 바치듯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을 '바친다(치:致)'는 것은 몸을 사린다거나 편한 부서와 자기가 선호하는 직무를 찾는 등 자신을 위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소속된 조직을 우선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조직을 위해 이 한몸 다 바쳐..' 라는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육체소진의 속된 유행어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앞 4장에서 설명한 '충(忠)'과 같은 개념인데 '자기를 다하는 것(盡己之謂忠)' 즉 자기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맡은 바 직분을 충실하게 수행하며 최선을 다한다는 성심성의(誠心誠意)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배운다는 것은 이러한 인륜의 도리를 행하기 위한 것이므로,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면 모두가 학문을 통해 끊임없이 배워 익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지 않고도 자신의 도리를 다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학문을 배운 사람과 같은 지극한 성심의 소유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학문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 정도로 높게 쳐준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항상 기울이라는 의미이다.
요즘 세태는 일과 개인간의 우선순위에서 개인을 먼저 생각한다고 다들 여긴다. 그러면 본 장에서의 조직우선의 개념과 상충된다고 보아야 할까? 결론은 '아니다'이다. 개인의 행복추구를 위한 본능적 욕구를 저버리라는 게 아니라, 소속된 조직에서 일할 때 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다.
본 장은 앞 장에서의 '여력이 있으면 학문을 하라(行有餘力, 則以學文)'는 내용을 되새기게 한다. 배워서 행하는 것도 좋지만 행동을 먼저 하고 여유가 있을 때 공부하여야 함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행위들에는 정성을 다해서 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학이(學而) 8장 -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글로벌 시대에도 通하는 인문학 최고봉인 《논어(論語)》 study 8회차.
금번 학이(學而)편 8章의 키워드는 '過則勿憚改(과즉물탄개)'입니다.
《논어(論語)》학이(學而) 8章 - Confucian Analects (Translated by James Legge)
子曰: 君子不重, 則不威, 學則不固.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군자부중, 즉불위, 학즉불고. 주충신, 무우불여기자, 과즉물탄개.)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가 후중(厚重)하지 못하면 위엄이 없으니, 학문이 견고하지 못하다.
충과 신을 자기 중심으로 잡고, 자기만 못한 자를 벗삼으려 하지 말며,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he Master said, "If the scholar be not grave, he will not call forth any veneration, and his learning will not be solid.
"Hold faithfulness and sincerity as first principles."
"Have no friends not equal to yourself."
"When you have faults, do not fear to abandon them."
* grave:근엄한,엄숙한, veneration:숭배,존경, call forth:불러일으키다,우러나게하다
[해설]
過則勿憚改(과즉물탄개), 자기 잘못을 고치는데 망설이지 말라.
겉으로 가볍게 행동하는 사람치고 내면에 무게있고 사려 깊은 사람 별로 보지 못하였다. 행동과 처신에 무게가 없는 사람은 위엄이 서지 않으니 학문을 해도 굳건하게 자기 것이 되지 못하고 가볍게 날아가 버린다. 군자의 도라는 것은 위엄과 중후함을 바탕으로 하여 배움을 통해 달성해야 하는 것이며, 배움의 도는 반드시 '충(忠:성실)'과 '신(信:신뢰)'으로써 자기중심을 잡고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으로 하여금 항상 충고하고 이끌어 주도록 해야 하는 것인데, 그래야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충실하지 못하고 신뢰가 없으면 결국 자기가 하는 일도 내실이 없게 된다. 내실이 없다 보니 잘못에 빠지기가 쉽게 되고 잘되도록 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래서 배우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충(忠)과 신(信)으로써 자기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성실하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는데, 사전에 미리 살피지 못하고 적절한 타이밍도 잡지 못하므로 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한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가까이 하게 되면 발전이 없게 된다. 또한 사람은 자기에게 잘못이 생기면 고치면서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데, 자기 잘못을 고치는데 인색하게 되면 나중에는 자신의 단점만 남게 되고 장점은 남아있지 않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자기자신의 덕(德)이 쌓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는 주변에서 가르침을 줄만한 현명한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기꺼이 가르침을 베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허물을 고치는데 꺼리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자기 잘못을 고치는데 망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선의지를 보인다면, 사람들이 도움을 주는데 인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학이(學而) 9장 - 신종추원(愼終追遠)
글로벌 시대에도 通하는 인문학 최고봉인 《논어(論語)》 study 9회차.
금번 학이(學而)편 9章의 키워드는 '愼終追遠(신종추원)'입니다.
《논어(論語)》학이(學而) 9章 - Confucian Analects (Translated by James Legge)
曾子曰: 愼終, 追遠, 民德歸厚矣.(신종, 추원, 민덕귀후의.)
증자가 말하길,
"초상을 삼가하고, 예전에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갈 것이다."
* 증자는 공자의 제자, 名은 삼. 字는 자여.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he philosopher Tsang said,
"Let there be a careful attention to perform the funeral rites to parents,
and let them be followed when long gone with the ceremonies of sacrifice;
- then the virtue of the people will resume its proper excellence."
* rite:(종교상)의식/의례, funeral rites:장례의식, perform an ancestral rite:차례를 지내다
[해설]
愼終追遠(신종추원), 일을 마칠 때 더욱 신경 쓰고 과거는 잊지 말고 기억하자.
'신종(愼終)'이란 마지막 가는 분에게 삼가 조의를 표하는 예를 말하는 것이고, '추원(追遠)'이란 이미 떠나신 분을 추억하여 표하는 예를 말하는 것이다. 즉 초상과 제사에 정성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인해 서로서로 감화되어서 그로 인해 조화롭고 바람직한 사회가 펼쳐지게 된다는 것으로, 이상적인 사회가 전개되는 방법의 하나를 보여 주고 있다.
'종(終)'이란 무엇인가 끝이 난다는 것인데, 끝나는 순간이 되면 사람들이 긴장을 풀고 소홀히 하기 쉽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근신하듯 세심히 살피며 유종의 미를 거두라는 의미이다.
'원(遠)'이란 과거에 있었던 일이나 어떤 사건을 의미하는데, 현재를 살아가면서 과거를 잊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같은 일의 반복으로 인한 낭비와 과거에서 얻어진 지식이나 경험을 놓치게 되어 결국 손해가 된다. 그래서 오래 전의 일을 기억하고 되새기어 현재의 교훈으로 삼으라는 의미이다.
본 장은 초상과 제사라는 전통의례를 통해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내용이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고, 그 의미는 충분히 현대적으로도 유추하여 해석해볼 수 있는 것이다.

학이(學而) 10章 - 구지여 억여지여(求之與 抑與之與)
子禽問於子貢曰: 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자금문어자공왈: 부자지어시방야, 필문기정, 구지여? 억여지여?)
子貢曰: 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자공왈: 부자온양공검양이득지. 부자지구지야, 기제이호인지구지여?)
자금이 자공에게 물어 말하길 :
부자(공자)께서 이 나라에 이르셨음에, 반드시 그 정치에 대해 들으실 것이니,
구해서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반대로) 주어서 되는 것입니까?
자공이 말하길 :
스승께서는 온화하고, 어질며, 공손하고, 검소하고, 겸양하여 그것을 얻으신 것이니,
스승의 구하심은 다른 사람들의 구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 자금(子禽): 성(姓)은 진(陳), 이름(名)은 항(亢).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 성(姓)은 단목(端木), 이름(名)은 사(賜). 공자의 제자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ranslated by James Legge)
Tsze-ch'in asked Tsze-kung saying,
"When our master comes to any country, he does not fail to learn all about its government. Does he ask his information? or is it given to him?"
Tsze-kung said,
"Our master is benign, upright, courteous, temperate, and complaisant and thus he gets his information. The master's mode of asking information,
-is it not different from that of other men?"
[해설]
☞ 남의 호감을 일부러 사려하지 말라. 스스로의 품격을 높이면 저절로 이루어진다.
'부자(夫子)'란 남의 존경을 받을 만한 스승의 호칭인데, 공자를 일컫는다. 공자의 두 제자인 자금과 자공의 문답을 통해 공자의 위대한 품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인데, 핵심 키워드인 '구지여, 억여지여(求之與, 抑與之與)'는 '구할 것인가, 줄 것인가'에 대한 양자선택의 해답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구해가게 할 것' 이란 제3의 해답이 들어있는 어려운 대목이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다가 들른 지역에서는 반드시 그 곳의 정치(통치)에 대한 자문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 자문의 주체에 대해, 그것이 공자가 먼저 통치자들에게 자문해주고자 해서였던 것인지 아니면 군주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공자가 자문해 주기를 바랐던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그에 대한 제자들의 문답에서는, 공자의 품격이 워낙 온(溫), 양(良), 공(恭), 검(儉), 양(讓) 하여 군주들이 공자의 품격을 보고 먼저 찾아와서 자문을 구한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 이는 보통사람들이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 목적의식이나 사욕(私慾)에 바탕을 둔 것과는 다름을 비교해서 설명해주는 것이다.
공자는 초기에 노나라에서 벼슬을 잠시 하였지만 성인의 큰 그릇을 감당하기에는 벼슬의 크기가 너무 작았다고 여겨진다. 사실은 공자의 이상적이라 할 실천철학을 따를만한 사회분위기가 아니었던 게 더 큰 이유겠지만.. 하여간 향후 만년에 이르기까지 중국 천하를 제자들과 함께 주유하면서 방문한 지역의 군주나 통치자들에게 정치 자문만을 해 주곤 했다. 그리고 군주나 통치자들도 자문만 구하였을 뿐 정치에 참여해주기를 권유하거나 벼슬을 권하지는 않았는데, 위대한 성인의 정치참여로 인한 군주 자신의 입지약화를 우려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연유도 군주나 통치자들의 사욕(私慾)에서 비롯됨을 보통사람에 비유하여 적시하고 있다.

본 장에서는 공자의 위대한 품격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알려 준다. 말하자면 품격이 높은 사람이 되려면 이러해야 한다는 본보기를 가르쳐 주는 셈이다. ① 온화하고 후덕한 인간미(온:溫) ② 평정을 잃지 않고 바른 태도(양:良) ③ 예의 바르고 공손한 자세(공:恭) ④ 검소하고 절제하는 생활(검:儉) ⑤ 겸손하고 사양하는 마음(양:讓)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품격이 높아지면 사람이 찾아오거나 따르게 되어있다. 스스로가 그것을 찾아다닌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특히 정치가들에게 이 대목을 권해주고 싶다. 유권자를 찾아서 표를 구하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의 품격을 높이는데 힘쓰라는 것이다. 이는 조직을 이끄는 리더에게 적용되는 바이다. 리더가 되어 자신의 리더십을 따르도록 하는데 애쓰지 말고 자신의 품격을 높여서 리더십이 저절로 형성되도록 노력하자.
논어(論語) 이해하기 - 제1편 제1장~제5장까지
《논어(論語)》 - B.C.500년 공자(孔子)의 가르침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21세기 말 선진국의 경제중심 물질문명의 발전이 한계에 달한 듯한 부정적 견해가 자주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고 인간들간의 관계를 다루는 사조가 대두되면서 새로이 주목받기 시작하는 철학이 있다.
그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동양고전이며 인간관계와 관련한 인류 최고의 주옥같은 가르침을 펼친 유교철학이다.
유교철학이 어느 듯 인간관계의 집약체인 인문학을 중시하기 시작한 서양세계에서 먼저 각광받기 시작하는 현상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지만,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동양의 여러 나라 중에서 특히 한국의 유교철학에 대한 애착은 지금의 이런 상황을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이 우리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려 전해지도록 하였는데 지금와서 보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문학의 최고봉이라 할 유교철학의 대표적인 경전이라 하는 공자(孔子)의 가르침인 《논어(論語)》에 대해 소개하고 인간관계에 대한 범 세계적인 기류에 앞서가자는 의미에서, 미국에서 번역한 논어와 비교하여 《논어(論語)》에 담긴 정확한 의미를 공부하면서 현대적인 이해를 함께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논어(論語)》와 제1편〈학이(學而)〉의 관계 《논어(論語)》는 총 22편(編)으로 편집되어 있는데, 그 구성을 보면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른 철학서나 사상서와는 다른 특징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하나가 《논어(論語)》를 구성하는 각 편들의 제목설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첫 장을 이루는 〈학이(學而)〉편의 내용구성에서 보이는 대표성이다.
《논어(論語)》는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것을 특별한 구분없이 정리한 것이라 하고, 특히 각 편(編)마다의 제목 또한 그 편의 내용을 대표하는 핵심 주제어라기 보다는 맨 앞에 등장하는 용어를 그대로 인용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논어(論語)》의 〈학이(學而)〉편을 공부하다 보면 〈학이(學而)〉라는 제목이 지니는 뉘앙스가 본문의 내용을 가장 잘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는 《논어(論語)》 전편에 걸친 대부분의 제목들과는 달리 책의 서두로서의 면모도 함께 보여 주고 있는 데서 이해할 수 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로 시작하는 《논어(論語)》의 첫 구절이 ‘배움(學)’을 시작으로 실천철학을 강조하는 공자의 말씀을 가장 잘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이 책을 편집하면서 신경을 쓰고 공을 들인 곳이 바로 이 〈학이(學而)〉편이 아닐까 한다.
〈학이(學而)〉편의 내용구성을 살펴보면 〈학이(學而)〉편 자체가 《논어(論語)》전체를 축소하듯 함축된 내용으로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단순히 ‘배움(學)’이라는 제목과 관련한 내용만을 담았던 게 아니라, 책 전체를 통해 중요한 부분들을 발췌하여 한 곳에 모아 놓은 듯한 집적체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는 책의 서두로서의 역할도 동시에 하고 있어 〈학이(學而)〉편만 정독해도 《논어(論語)》 전체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대단히 정성을 기울인 역작이란 생각이 든다.
그 다음 편인 〈위정(爲政)〉편도 다른 편들과는 다르게 〈학이(學而)〉편과 유사한 성격의 내용구성을 보이고 있지만, ‘배움’이란 주제를 시작으로 한 《논어(論語)》의 대표성에 못 미치고 있다.
〈학이(學而)〉편에는 ‘배움’을 기반으로 하여, 집단을 이루고 사회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본성을 지닌 인간들의,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생활철학을 분야별로 두루두루 담고 있다.
삶에 있어서의 기초적인 지침과 행동기준이 되는 내용들을 골고루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논어(論語)》 전편에서 가르침으로 보여 줄 내용들을 축약한 격으로 즉, 유가사상의 기본인 다섯가지 덕목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에 관련된 항목들이 내포되어 있다.
상하좌우간 인간관계상의 관계지침이나, 위정자(爲政者)의 자세, 자기반성(日三省) 및 자기내면의 성찰 등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배움(學)’에 대한 지침인데 바로 유가사상이 현실과 괴리된 학문이 아니라 철저하게 실천을 강조하는‘실천철학(實踐哲學)’이란 점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는 것’이 아닌 ‘배우고 때에 맞춰서 익히는 것’이란 사실과, ‘몸소 실천하고 여력이 있으면 배운다’는 사실 등에서 이론보다는 실천을 우선시 하는 유가사상의 정수(精髓)가 담겨져 있는 것인데, 이러한 것들이 《논어(論語)》의 진가를 드러나게 해주는 〈學而〉편의 매력이 아닐까.
〈학이(學而)〉편의 또 다른 매력 하나는 주석(註釋)에 있다. 후대의 유명학자들의 주석에서 오늘날 우리가 좀 더 쉽게 이해하고 실천하는데 도움이 되는 주옥같은 주석들이 담겨 있는데, 특히 유가의 다섯 가지 핵심적 덕목 외에 주요한 덕목들인 ‘충(忠)’,‘경(敬)’,‘근(謹)’,‘신(愼)’,‘선(善)’,‘미(美)’ 등에 대한 보충적인 해설도 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학이(學而)〉편은 《논어(論語)》를 집약하여 편찬한 개략서(槪略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훌륭한 내용의 집결판이라 할 것이다.

 

학이(學而) 1장 -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글로벌 시대에도 通하는 인문학 최고봉인 《논어(論語)》 study 1회차. 금번 학이(學而)편 1章의 키워드는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입니다.
논어를 꿰뚫는 핵심은 역시 평생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논어(論語)》학이(學而) 1章 - Confucian Analects (Translated by James Legge) 子曰: 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학이시습지,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불역낙호 인부지이불온,불역군자호)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배우고 그것을 때에 맞춰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온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he Master "Is it not pleasant to learn with a constant perseverance and application? "Is it not delightful to have friends coming from distant quarters? "Is he not a man of complete virtue, who feels no discomposure though men may take no note of him?"
[해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 때에 맞게 배우고 몸에 체득화해야 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내용이지만, 그 해석에 있어서는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시습지(時習之)'를 '때때로 익히면'으로 단순 이해하고 있는데, 때때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그 때에 맞게 거듭하여 실천으로 옮겨서 몸으로 익히면'을 의미한다.
즉, 배워서 그냥 시간이 지나고 잊어버리는 차원이 아니라 그것을 몸으로 직접 실천으로 옮겨 몸에 배이도록 해야 '즐거운 열(說)'이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문에서의 '끊임없는 노력과 적용(a constant perseverance and application)'이란 번역은 의미를 제대로 해석한 것으로 여겨진다.
항간에 떠도는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라는 노래에는 노는 것 자체만 놓고 보면 때에 맞춰 놀아야 하니 한량에게는 맞는 듯 보이지만, 젊어서 학문을 때에 맞춰 익혀야 하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나중에 늙어서 진짜로 놀지 못하고 급급하며 일해야 하는 후회막급이 됨을 견제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기뻐하는 표현으로 '열(說)'과 '낙(樂)'이 등장한다.
이는 기뻐하는 수준의 단계를 나타내고 있는데, '열(說)'은 마음속으로 기뻐하는 것이고 '낙(樂)'은 그 기뻐함이 몸 밖으로도 드러나는 것이다.
영어번역에서 보면 'pleasant(즐거운)'와 'delightful(정말 기분 좋은)'로 다른 뉘앙스를 표현하고 있다.
학문은 자기내면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면 벗의 방문은 내면의 기쁨에 외면의 즐거움이 더해진 셈이다.
우리가 통칭 말하는 친구에는 두 종류가 있다. 둘 다 ‘벗'을 의미하는 ‘붕(朋)’과 ‘우(友)’이다.
‘우(友)’는 단순히 정(情)을 나누는 친구이지만 ‘붕(朋)’은 뜻을 같이하는 동지(同志)를 가리킨다.
아무리 친한 고향친구(友)라 하더라도 찾아오면 반가운 건 마찬가지 이지만 그렇다고 기뻐서 즐거운 수준의 '낙(樂)'의 단계는 아닌 것이다.
자기와 취미가 같거나 같은 분야를 연구하거나 지향 하는 바가 같은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기쁘고 즐겁다는 의미이다.
요즘 시대에는 내가 한 일을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부러 자기PR을 해야 하는 시대에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기는 그래서 군자의 경지라고 표현하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서 '온(慍:성낼)'은 '마음속으로 불편한 바(discomposure)'를 의미하는 것으로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자신을 알아주고 말고는 남의 영역이어서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그렇다고 서운함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속의 송곳)'란 말이 있다.
'주머니 속에 뾰족한 송곳을 숨겨 두더라도 언젠가는 그 뾰족함이 주머니를 뚫고 나오게 되어 있다'는 고사성어인데, 제 아무리 숨겨도 사람의 능력이나 성과는 언젠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의미로 그랬을 때 남들이 몇 배나 더 알아주고 인정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행동을 하기란 정말 어렵다.
그것은 어느 정도의 자기수양이 가능한 사람이라야 행할 수 있는 경지일 것이지만, 우리는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학이(學而) 2장 - 효제(孝弟)
글로벌 시대에도 通하는 인문학 최고봉인 《논어(論語)》 study 2회차. 금번 학이(學而)편 2章의 키워드는 '孝弟(효제)'입니다. 《논어(論語)》학이(學而) 2章 - Confucian Analects (Translated by James Legge)
有子曰: 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者, 鮮矣;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기위인야효제, 이호범상자, 선의, 불호범상, 이호작란자, 미지유야. 군자무본, 본입이도생. 효제야자, 기위인지본여)
유자가 말하길 "그 사람됨이 효스럽고 공경스럽고서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드무니, 윗사람을 범하기 좋아하지 않고서 난을 일으키기 좋아하는 자는 있지 아니하다.
군자는 근본을 힘쓴다.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기나니 효와 제라는 것은 그 인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he philosopher Yu said, "They are few who, being filial and fraternal, are fond of offending against their superiors. There have been none who, not liking to offend against their superiors, have been fond of stirring up confusion.
* filial: (부모에 대한) 자식의, be filiar: 효성스럽다, fraternal: 형제간의, 공제회
[해설]
孝弟(효제), 인간관계에서의 질서의식 논어의 핵심 키워드는‘효제(孝弟)’이다.
‘효(孝)’란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뜻하고 ‘제(弟)’란 ‘형과 연장자를 잘 섬기는 것’을 뜻한다.
‘효제’는 유교철학의 핵심가치인 ‘인(仁)’을 실행하는 근본이라 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효제’에서 출발하여 다른 가치덕목들이 파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효제’가 집안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행동규범이라면 이 ‘효제’가 충만해지고난 후에는 자연히 집밖으로 전파되어 타인에게 ‘인애(仁愛)’가 펼쳐지게 되는 것이니 바로 ‘효제’가 ‘인(仁)’의 근본이 되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효제를 다 하면 어진(仁) 사람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며, 다만 어진(仁) 사람이 되는 출발점이 ‘효제’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효제’가 ‘인(仁)’을 실행하는 근본인 것이지 ‘인(仁)’ 그 자체의 근본은 아닌 것이다.
훌륭한 사람이라면 일을 함에 있어서 그 일의 근본에 전력을 기울이는데 그 근본이 바로 서면 자연스레 ‘도(道)’가 생겨 난다고 하였다.
일을 함에 있어 일의 목적과 일을 하는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고 일을 함에도 총력을 다하여 한다면,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의 파급효과는 저절로 확산되는데 이는 굳이 전파하려고 하지 않아도 긍정적인 효과가 주변과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과 같다.
이런 조직체나 사회가 이루어진다면 그 조직이나 사회는 최강의 조직이나 사회가 될 것이다.
구성원 전체가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견지한다면 못 이룰 일이 없고 못할 것이 없는 최고의 집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효제(孝弟)’와 ‘인(仁)’의 관계가 바로 이와 같다.
논어는 엄격한 질서의식을 근간에 깔고 있다.
이는 신분제도상의 타율적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의 자율적 선후질서를 의미하는 것인데도, 마치 계급제 사회를 옹호하는 듯한 오해를 부르는 원인이 되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일정한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단연코 혼란이 야기될 소지가 크기 때문에, 인류역사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식으로든 특유의 질서가 존재해 왔다.
특히 공동체를 이루고 공동체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경중에 따라 담당하는 사람의 선정에 기준이 있어야 효과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인 바, 그 기준으로 삼는 것이 논어에서는 자발적 질서를 대표하는 ‘효제’인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생활에서 직장이란 공동체에는 직급에 의한 복종관계가 구축되어져 있는데, 이는 규정이나 규칙으로 뒷받침되는 타율적인 질서인 셈이다.
타율적이다 보니 자율적인 섬김 보다는 장기적으로 덜 효과적일 수 밖에 없다.
이를 자율적 섬김인 ‘제(弟)’로 대체한다면 분명 직장생활이 타율적일 때 보다 더욱 화기애애하고 유연한 관계구축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과거 서구 중심의 인간관계 설정으로 인한 한계 도달에 대한 대안 제시로 오늘날《논어(論語)》가 새롭게 각광을 받는 이유이다.
부모를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치고 선배와 연장자를 섬기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그러한 분위기에서 선배나 직장상사에게 대들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또한 그런 사람이 적다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상하간에 혼란이 야기될 소지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유사한 조직이 바로 최근 우리나라 기업에서도 도입되고 있는 GWP(Great Place to Work = Great Work Place) 조직이다.
* GWP 조직은 신뢰(Trust)와 자긍심(Pride), 배려(Fun)라는 세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고성과 조직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이다.
조직과 상사를 신뢰하고 자기 업무와 지위에 자긍심을 가지면서 동료와 배려를 통해 즐겁게 일하는 것을 ‘GWP 조직활성화’라고 하는 경영활동이고 이러한 경영활동이 활성화되어 있는 조직이 GWP조직인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GPTW(Great Place to Work) Institute가 개최하는 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GWP를 잘 하는 기업에서 발표도 하고 GWP 활동의 수준과 경향에 대한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학이(學而) 3장 - 교언영색(巧言令色)
글로벌 시대에도 通하는 인문학 최고봉인 《논어(論語)》 study 3회차. 금번 학이(學而)편 3章의 키워드는 '巧言令色(교언영색)'입니다.
《논어(論語)》학이(學而) 3章 - Confucian Analects (Translated by James Legge)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교언영색, 선의인!)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말을 좋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한 사람치고 어진(仁)이가 드물다."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he Master said, "Fine words and an insinuating appearance are seldom associated with true virtue."
* insinuating: 넌지시 비추는, 간사한
[해설]
교언영색(巧言令色), 듣기 좋게 꾸며서 말하지 말라. 교(巧)는 좋다는(好) 의미이고, 영(令)은 잘한다는(善) 의미이다.
좋게 꾸며서 말하고 간사함으로 남을 기쁘게 하기 시작하면 사람을 쉽게 속이게 되고 점차 이루고자 하는 욕심만 커지게 되어 결국은 마음이 황폐해지고 왜곡되어 진다.
성인이 말수가 적은 것은 인정이 없고 야박해서가 아니라 말을 좋게 꾸며서 하게 될까 봐 우려해서이다.
오늘날 주변에 보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좋게 말해주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가급적 충돌을 피하고 척(隻:반목)을 지지 않으려는 심리가 잠재되어 있는데, 한편으로 보면 상대방으로부터 좀 더 나은 발전의 계기를 빼앗는 것도 되지만 자신의 마음속에 적극성 보다는 회피의 소극성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순간에는 기분 좋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는 서로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최근 유행하는 말은 틀린 것인가?
행위의 결과를 긍정적으로 유도해 주는 것을 칭찬이라 한다면, 속마음과는 다르게 꾸며서 말해주는 교언(巧言)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는 칭찬을 하더라도 결과의 장단점을 지적하면서 발전의 계기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무조건적인 좋은 말은 칭찬이 아닌 것이다.
'교언영색'에는 쓸데없는 말을 적게 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어떻게 보면 야박하게 보일지 몰라도 말을 적게 함으로써 필요없는 말로 결국은 나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경우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학이(學而) 4장 - 일삼성오신(日三省吾身)
글로벌 시대에도 通하는 인문학 최고봉인 《논어(論語)》 study 4회차. 금번 학이(學而)편 4章의 키워드는 '日三省吾身(일삼성오신)'입니다.
《논어(論語)》학이(學而) 4章 - Confucian Analects (Translated by James Legge)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
증자가 말하길, "나는 매일 나의 몸을 세 번 살핀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일을 함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벗과 더불어 사귐에 믿음으로 하지 않았는가?
전수 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 증자는 공자의 제자, 名은 삼. 字는 자여.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he philosopher Tsang said, "I daily examine myself on three points: - whether, in transacting business for others, I may have been not faithful - whether, in intercourse with friends, I may have been not sincere; - whether I may have not mastered and practiced the instructions of my teacher."
[해설]
日三省吾身(일삼성오신), 하루에 내 행동의 세가지를 살핀다. 유명한 '일일삼성(一日三省: 하루에 세가지를 살핀다)' 고사인데, 충(忠)·신(信)·습(習)이 세가지에 해당한다.
자기를 다하는 것을 충(忠)이라 하는데(盡己之謂忠), 이는 자기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충실하게 즉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성실한 것을 '신(信)'이라 하고 스승에게서 가르침 받은 것을 '전(傳)'이라 한다.
이 장에서는 논어 첫 장에 등장하는 '학(學)' 즉 배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 주고 있는데, '충실하고 신뢰있고 몸에 익히는' 과정이 곧 배움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에 적용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의미는 조직에서 맡겨진 자기책임의 일을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주어진 일을 하되 매일매일을 충실하게 해야 한다.
즉 직장인이라면 직장 내 자기가 속한 장소에서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양심에 한 점 부끄럼없이 최선을 다해 일하면서 또한 대인관계에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며, 상사나 선배로부터 일하는 방법이나 지식을 전수받게 되면 반드시 체득화시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들이 직장생활에서 지켜야 할 세가지가 아닐까 한다.
'습(習)'이란 단순히 안다는 의미가 아니라 몸에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전수받은 것을 몸에 완전히 익도록(熟)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는 매일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익히는 과정을 겪는다.
내가 찾아서 알게 된 정보나 지식도 있지만 상사나 선배 등 윗사람으로부터 전해받은 정보와 지식도 있다.그런데 윗사람으로부터 전수받은 것들은 단순정보 보다는 내가 알아야 할 관련된 필요한 지식이 대부분이다.
유사한 일을 하기위해 모인 선후배 관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단순히 알고 넘어가는 수준으로 그치면 안 되는 것이다.
내 몸에 완전히 익어서 내 것으로 만들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나 또한 후배들에게 다시 전수해 줄 수가 있게 된다.
이러한 배움(學)에서 비롯된 익히는 과정이 한 집단이나 단체조직의 영속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이다.

 

학이(學而) 5장 - 경신절애사(敬信節愛使)
글로벌 시대에도 通하는 인문학 최고봉인 《논어(論語)》 study 5회차. 금번 학이(學而)편 5章의 키워드는 '敬信節愛使(경신절애사)'입니다.
《논어(論語)》학이(學而) 5章 - Confucian Analects (Translated by James Legge)
子曰: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 (도천승지국 경사이신, 절용이애인, 사민이시)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천승의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일을 공경스럽게 하고 믿음가게 하며, 쓰기를 절도있게 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백성을 때에 맞게 부려야 한다.
* 道(도): 다스리다(治)
CONFUCIAN ANALECTS - Confucius
The Master said, "To rule a country of a thousand chariots, there must be reverent attention to business, and sincerity; economy in expenditure, and love for men; and the employment of the people at the proper seasons."
* chariot: (말이 끄는 고대의) 전차, reverent: 경건하게, 정중하게, expenditure: 지출, 비용
[해설]
敬信節愛使(경신절애사), 조직을 리딩하는 5가지 원칙 '천승지국' 이란, 말이 끄는 전차를 1천대 규모로 운영할 수 있는 나라인 제후국 수준을 뜻한다.
'경(敬)'은 공경한다는 뜻이지만 계속하여 한가지만 주창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일관되게 한다는 것이다.
본 장에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5가지 요체를 말하고 있다.
오늘날의 단체나 조직을 이끄는 원칙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① 일을 함에 일관되게 할 것 (경사:敬事)
② 일을 함에 믿음가게 할 것 (신:信)
③ 지출에 있어서는 절도있게 할 것 (절용:節用)
④ 소속 구성원을 소중히 할 것 (애인:愛人)
⑤ 부릴 때는 시기에 맞게 할 것 (사민이시:使民以時)
위(정부,상사)에서 정책을 펼치거나 일을 추진함에 있어 일관되게 하지 않으면 아래(백성,구성원)에서는 혼란스러워 급기야는 방만하게 되는데, 신뢰가 없다 보니 의심하게 되고 결국은 정책이나 일이 제대로 되지 않게 된다.
또한 절차와 법도에 따라 절약하여 예산을 사용하지 않으면 백성(구성원)에게 추가 지출을 요구하여 손해를 끼치게 되고 백성(구성원)들을 소중하게 아끼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구성원을 소중히 하려면 반드시 예산을 절도에 맞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상의 5가지는 뒤의 결과에 대해 앞에서 원인이 되는 순서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그 선후를 잘 가려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구성원)을 부릴 때 그 시기를 살펴 타이밍을 적절하게 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는 결과가 되어 아끼고 위한다고 주창해도 오히려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시킨다'는 말이 바로 그것인데, 특히 조직에서 상사가 구성원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할 때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원칙이다.
세네카의 행복론 - 인생이 왜 짧은가
자네가 인생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개인적인 사정이나 공적인 사정으로 풀 수도 끊을 수도 없는 올가미에 걸려들었다고 가정해보세. 올가미에 걸린 사람은 처음에는 거추장스런 올가미를 간신히 견디지만 일단 그것을 화내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나면, 필연은 용감하게 견디는 법을 가르치고 습관은 쉬이 견디는 법을 가르친다는 점을 명심하게나. 자네는 인생의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움과 휴식과 쾌락을 발견하게 될 것이네.
자네가 불쾌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말일세.
자연은 우리가 고난을 당하도록 태어난 줄 알고는 불쾌한 일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습관을 만들어내어 가장 어려운 일에도 금새 친숙해지도록 만들었네.
그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베푼 가장 큰 호의라고 할 수 있네.
불행이 처음 우리를 가격했을 때와 같은 기세를 계속 유지한다면 견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네.
 

우리는 모두 운명에 매여 있네. 어떤 사람은 느슨한 황금 사슬로, 어떤 사람은 저급한 금속으로 만든 팽팽한 사슬로.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똑같이 포로이며, 묶은 자도 묶여 있기는 마찬가지네.
왼손의 사슬을 더 가볍다고 여기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다.
어떤 사람은 높은 관직에 묶여 있고, 어떤 사람은 부에 묶여 있고, 어떤 사람은 고귀한 가문으로 고통 받고, 어떤 사람은 비천한 출신으로 고통 받는다네.
어떤 사람은 이방인의 지배에 머리를 숙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지배에 머리를 숙인다네.
어떤 사람은 추방되어 한곳에 붙들려 있고, 어떤 사람은 사제가 되어 한곳에 붙들려 있다네.
인생은 모두 종살이일세.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처지에 친숙해지고, 되도록이면 불평을 적게 하고, 거기에 유리한 점이 있으면 무엇이든 꼭 붙잡아야 하네.
담담한 마음으로 위안을 찾지 못할 만큼 괴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네.
작은 땅도 기술적으로 나누면 여러 가지 용도로 쓸 수 있고, 좁디좁은 공간도 잘 배열하면 사람이 살 수 있을 때가 비일비재하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이성을 사용하게.
그러면 딱딱한 것이 부드러워지고, 좁은 것이 넓어지고, 무거운 것이 그것을 질 줄 아는 사람을 덜 누를 것이네.
 

그리고 욕망은 멀리 쏘다니게 할 것이 아니라 가까이서 돌아다니게 해야 할 것이네.
욕망을 완전히 가둘 수는 없으니까.
이룰 수 없거나 이루기 어려운 것들은 내버려두고 가까이 있거나 이루어질 성싶은 것들을 따라 다니되, 모든 것은 똑같이 하찮고 겉보기만 다를 뿐 속으로는 똑같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네.
우리는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시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네.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낭떠러지일 수도 있으니까.
 

한편 적대적인 운명이 어정쩡한 위치에 갖다놓은 자들은 원래 교만해질 수 있는 처지에서 교만을 끌어내리고 되도록 자신들의 행운을 평균 수준에 맞춘다면 더 안전할 것이네.
사실 떨어지지 않고는 내려올 수 없는 높은 곳에 어쩔 수 없이 버티고 있어야 하는 사람도 많다네.
하지만 그들도 자신들의 가장 큰 짐은 자신들이 어떨 수 없이 남에게 짐이 되어야 하고, 높은 자리로 들어올려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 못 박혀 있는 것임을 증언해야 한다는 것이네.
그들은 정의와 온유함과 인간성과 선심을 쓰는 선의의 손으로 유리한 미래를 위하여 준비를 많이 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더 마음 편하게 떠 있을 수 있는 것이네.
 

하지만 우리의 출세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마음의 동요에서 구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네.
언제 멈출 것인지를 우연에 맡길 것이 아니라, 그러기 훨씬 전에 우리는 스스로 멈춰서야 할 것이네.
그래야만 어떤 욕망이 마음을 자극한다 하더라도 한정되어 있는 까닭에 무한하고 불확실한 것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지 않을 것이네.
《인생이 왜 짧은가   p.102~104》


그러니 그대는 철학자들이 돈을 갖지 못하게 금지하는 일을 중단하시오!
지혜에게 가난을 선고한 자는 아무도 없어요. 철학자도 큰 재산을 소유할 수 있으나, 그것은 남에게서 빼앗은 것도, 남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불의를 저지르고 마련한 것도 아니며, 더럽게 모은 것도 아니며, 수입과 지출이 정직하여 시기하는 자 외에는 아무도 그것을 보고 한숨 짓지 않아요.
그런 재산이라면 그대가 원하는 만큼 쌓아 올리시오.
아무리 많아도 그것은 정직한 재산이지요.
그 중에는 남들이 저마다 제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많을지라도 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현인은 행운의 호의를 물리치지 않을 것이며, 정직하게 모은 재산을 자랑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것이오.
그러니 그가 자기 집 대문을 열고 모든 시민을 자신의 재산 앞으로 다가오게 하여 "누구든지 자기 재산이다 싶은 것이 여기 있다면 가져가시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에게 자랑거리가 되겠지요.
이렇게 말한 뒤에도 재산이 줄지 않는다면 그는 위대한 사람이고 최선의 부자인 셈이지요.
말하자면 그는 아무 탈 없이 안전하게 만인에게 수색을 허용하고, 그런데도 아무도 그에게서 압수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면, 그는 만인 앞에 떳떳한 부자인 것이지요.

현인은 부당하게 번 돈은 한 푼도 자기 집 문턱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겠지만, 그것이 행운의 선물이든 미덕의 결실이든 큰 재산을 문전박대하지도 않을 것이오.
왜 그가 그런 재산에게 좋은 자리를 내주면 안 되는 거죠?
그런 재산이 올 테면 오라지, 손님으로 맞아줄 테니까.

현인은 재산을 자랑하지도 감추지도 않을 것이며
- 하나는 진부한 사람의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겁 많고 소심하여 이를테면 큰 선(善)을 호주머니 안에 넣고 다니는 사람의 태도지요 -
앞서 말했듯이 문전박대하지도 않을 것이오.

그는 뭐라고 말할까요?
그는 "너는 필요 없어" 아니면 "나는 부를 쓸 줄을 몰라"라고 말할까요?
그는 제 발로 걸어서 길을 갈 수 있는데도 마차를 타기를 선호하듯이, 가난해도 되지만 부자이기를 원할 것이오.
마찬가지로 그는 재산을 가지되 그것이 마치 경박하고 덧없는 것인 양 다른 사람이나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것을 용납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는 선사할 것이오.
(왜 그대들은 귀를 쫑긋 세우는 것이며, 왜 지갑을 여는 거죠?)
그는 선한 사람들이나 선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에게 선사할 것이오.
이때 그는 수입과 마찬가지로 지출에 관해서도 해명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고는 심사숙고하여 가장 자격이 있는 사람을 선발할 것이며, 정당하고 납득이 가는 이유에서 선사할 것이오.
 
잘못 선사하는 것은 수치스럽게 잃어버리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지요.
그의 주머니는 열려 있어 많이 나오기는 하나 새어나가는 것은 없도록 구멍이 나 있지는 않을 것이오.
《인생이 왜 짧은가   p.215~217》세네카의 행복론, 숲 

 

내부지향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계boundary'의 개념을 배워야 한다.

경계는 구분과 한계를 뜻한다.

내 것과 네 것을 분류하는 기준이 되고 내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네 권한은 어디를 넘어올 수 없는지 결정한다.

 

관계에서는 '양팔 벌리기' 정도의 거리감이 필요하다.

회사 동료, 지인뿐만 아니라 친구, 가족과도 마찬가지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두 팔을 옆으로 뻗어보자.

그리고 힘껏 휘둘러보자.

아무것에도 부딪히지 않을 물리적 공간이 있어야 몸을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마음도 똑같다.

사람은 마음의 팔을 360도 막힘없이 휘돌릴 수 있는 정도의 심리적 영역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그 영역에서 온전히 자기다워진다.

그곳은 자유로운 독립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의 공간이자, 안정감을 보장받는 장소이다.

외부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해 도망갈 수 있는 도피처이고, 휴식과 충전을 통한 자기 회복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우리 내면은 단단하게 자란다.

 

또한 적절한 거리감은 혼자 있고 싶은 욕구와 타인과의 친밀감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충족해준다.

사적인 경계가 존중되는 관계에서는 함부로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교집합 영역에서 만나 함께 기쁨을 누릴 줄 안다.

어떤 이유로 인해 너무 가까워지거나 너무 멀어지더라도 고무줄처럼 탄성력이 좋아서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그러나 타인지향 시나리오를 가진 사람들은 그 같은 경계를 배운 적이 없거나 포기해버린 경우가 많다.

상대와 거리를 둘 때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 상대에게서 물러나려고 하면 감당하기 힘든 질타를 받아왔기에 그렇다.

거리 감각을 잃어버린 나머지, 이상의 반경에서 너무 많은 사람과 부딪치며 치인다.

 

누군가 "우리끼리 왜 그래?" 하면서 최소한의 거리를 무시하고 슬쩍 들어올 때도 둔감하다.

바람직한 기준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항상 왜곡된 지점에서 관계를 시작하고 지속한다.

결과적으로 부당한 감정과 부담을 떠맡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나의 감정과 욕구를 무시했다면, 상의도 동의도 없이 나에 관한 결정권을 대행하려 했다면, 나의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제 것처럼 이용했다면, 경계 위반이다.

내부지향 시나리오도 경계 설정을 바로잡을 때 만들어진다.

 

우리에게 경계 너머의 일에 대해 등을 돌릴 권리, 내가 원하지 않는 제안을 사양할 권리가 있다.

동시에 자발적으로 경계를 넘어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최종 결재권은 나에게 있어야 한다.

 

pp.155~157.

 

신동원 - 멍 때려라
대기업에 다니는 후배 한 명이 얼마 전 상사에게 호된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평소 성실하고 일 잘하기로 소문난 후배였기에 깜짝 놀라 그 이유를 물어보니 예전에 없던 잦은 실수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공부든 업무든 한번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끝을 볼 정도로 몰입과 집중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목표로 잡은 분량을 초과하면 초과했지 모자란 적이 없었다.
또한 보고서든, 기획안이든 약속 날짜를 칼같이 지키는 걸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데 요즘 보고서 제출 기일을 어기는 것은 보통이요, 업무와 회의 시간에도 도무지 집중하지 못하고 불안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계약서에 사인만 남은 중요한 협상 테이블에서 휴대전화에 정신이 팔려 중요한 사항을 미처 체크하지 못하고 그냥 사인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고 한다.
이처럼 습관적, 강박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인터넷, SNS, 이메일 등은 우리의 집중력을 사정없이 흔들어놓는다.
한번 흩어진 집중력을 다시 그러모아 원래의 목적지로 되돌아가는 데는 처음 시작할 때보다 수십 배의 노력이 든다.
만약 공부하거나 일하다가 5분 정도 다른 곳에 정신을 팔았다면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가는 데 최소한 30분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후배는 자신의 태도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리더들의 마인드가 문제라고 항변했다.
800여 명이 넘는 SNS 인맥을 관리하고 그들이 쏟아내는 무한대의 정보를 파악하려면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기업 마케팅에서 SNS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데, 이를 관리하는 자신을 질책하느냐면서 지금까지도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나 역시 한때 요술 방망이 같은 스마트폰의 매력에 푹 빠진 적이 있다.
내 생각에 지지를 보내주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SNS는 나를 흥분시켰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중독과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정신과 전문의인 나조차도 스마트폰이 없거나 무선 인터넷의 접속 상태가 원활하지 못할 때 솟아오르는 짜증에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러던 어느 날 진료 중에도, 회의 중에도, 이동 중에도 인생의 바이블이라도 되는 양 하염없이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순간 내가 기술과 정보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기술과 정보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도구는 좋게도 나쁘게도 사용될 수 있다.
의로운 자에게 무기가 주어지면 사람을 살리는 칼이 되지만, 악한 자에게 무기가 주어지면 사람을 해치는 칼이 된다.
문제는 사람이지 도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디지털 기기도 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면 언젠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이쯤 되면 인간이 과연 기술의 주인이 맞는지,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멍 때려라 p.94~96》
우리가 인지하고 기억하는 정보는 대부분 장기 기억에 저장된 내용이다.
지금 이 순간 받아들인 단순한 데이터는 말 그대로 단편적인 정보일 뿐 '알고 있는 지식'은 아니다.
만약 당신이 태어나 처음으로 자동차를 봤다면 두뇌의 여러 기관 중 해마가 가장 먼저 작동하고 자동차의 촉감이나 냄새, 생김새 등의 정보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해마에 새로이 들어온 정보는 방금 마트에서 장을 봐온 물건과 같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을 떠올려 보라.
바로 물건을 제자리에 정리하는 것이다.
냉장고, 싱크대, 화장실, 베란다 등 제자리에 정리하지 않으면 집은 어수선해지고 정작 필요할 때, 물건을 찾지 못해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이런 불행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기억저장 장치인 해마가 정리를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데 해마에 저장된 새롭고 단편적인 기억이 오래 묵은 좋은 포도주로 탄생하려면 경험과 노하우를 간직한 신피질과 소통할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잠들어 있을 때 바로 해마와 신피질의 소통이 시작된다.
우리가 자는 동안 해마는 신피질과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해 기존의 지식과 통합시킨다.
그날 배운 것을 스스로 복습하며 필요한 정보는 관련된 회로로 전달하고, 필요 없는 정보는 삭제한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해마는 저장된 기억을 필요에 따라 정리하고 정돈하는 숙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인간은 대부분 자신의 일생 중 3분의 1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숙면으로 보낸다.
여든 살의 노인이라면 대략 26년의 시간을 수면으로 보내는 셈이다.
갑자기 잠자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드는가?
하지만 이는 결코 아까워할 시간이 아니다.
멍 때릴 여유가 없다면 잠이라도 제대로 자야 한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역사는 낮에 이뤄지지만, 업적을 이뤄내는 위대한 결정은 우리가 잠든 사이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 과학자들이 인간의 수면에 주목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잠드는 순간까지 휴대전화를 손에 놓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보 검색과 게임을 통해 두뇌가 활성화된 채로 잠들면 멜라토닌이 억제되어 수면의 질이 떨어진다.
수면 부족은 무기력, 두통, 학습장애로 이어지고 집중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에도 문제가 생긴다.
쏟아져 들어오는 엄청난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고 싶다면, 건강한 수면인 필수다.
잠자리에 들기 전만이라도 휴대전화를 멀리하고, 낯선 분야의 책을 읽거나 그날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과학자들처럼 세상을 바꿀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우리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바꿔줄 현안이 떠오를 것이다.
《멍 때려라   p.170~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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