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육군대학원에서 강의하는 군 역사가 타미 비들Tami Biddle에게 학생들한테 1945년의 봄과 여름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느냐고 물었다.

제 할머니 세이디 데이비스Sadie Davis에겐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모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죠. 한 명은 태평양 전역에서 오랫동안 있었고, 한 명은 유럽 전역에서 싸웠습니다.

유럽 전역에 있던 이들에게는 규슈에 상륙하기 전 전장을 떠날 뚜렷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규슈 상륙은 1945년 일본에 대해 계획하고 있던 침공 작전이었다.

많은 일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50만 이상의 미국 군인이 목숨을 잃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미국이 해상 봉쇄, 일본 도시를 대상으로 한 공중전, 결국에는 핵무기로 극도의 잔인함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 상륙 작전에 참여했을 것입니다.

저는 할머니가 그 순간 잔인해질 준비가 되었었다고 확신합니다.

아들들이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셨으니까요.

전쟁 중에는 많은 사람이 그런 식의 감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 상황을 전체적으로 보고 파악합니다.

무엇이 변화를 초래했는지 보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 파괴의 결과, 히로시마와 폭격당한 독일 도시의 사진들도 보겠죠. 그리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다른 방법은 없었어?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파우스트 같은 거래를 했다는 거잖아! 도덕을 대가로 승리를 얻은 거야!'

커티스 르메이Curtis LeMay는 결실 없는 임무라고 여기는 일을 하다가 얼마나 많은 부하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상기하기 위해 폭탄 피해를 입은 슈바인푸르트와 레겐스부르크의 사진을 집 현관에 걸어두었다.

그가 가장 성공적인 일을 하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지 매일 상기하기 위해 도쿄의 소이탄 폭격을 담은 공격 사진까지 걸어두었더라면, 나는 커티스 르메이를 훨씬 좋은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비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야말로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저는 전쟁에 두 아들을 보내고 그런 일, 적한테 엄청나게 파괴적인 공격을 가해서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아들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바랄 수밖에 없는 할머니 같은 상황에 처할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제 평생에 그런 일을 절대 마주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식으로 느끼는 사람들을 감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pp.226~228.

 

 

누군가 우울함에 집착하고 싶다고 하면 분명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다. 삶은 불공평하고, 내가 느끼는 슬픔의 원인은 다른 사람에게 있으며,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느낌을 오랜 시간 조건화한 나머지 우리는 절망을 습관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에 계속 매여 있으면 자기연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기연민은 결국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우리가 절망에 계속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절망 속에 사는 사람은 자신의 우울감에 스스로 책임지는 모험을 하지 않아도 되거나 평생토록 이어온 삶의 패턴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절망은 안락하게 괴로움을 겪게 한다.

이 점에서 절망은 그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다.

특정한 물건이나 특정한 사람이 없으면 행복하거나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흔하다. 마치 처음부터 불행하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듯하다.

그들의 삶의 태도는 나의 것이 없으면, 특정한 사람이 없으면, 돈이 없으면, 우정이 없으면 우울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부족과 결핍을 자신의 절망에 대한 변명으로 여기도록 조건화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정도는 달라도 이런 믿음을 갖고 있으며 그에 따라 다양한 정도의 집착을 키워 왔다.이 집착이 절망의 근원이며, 우리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근거로 자신의 우울을 정당화한다.

실제로 어떤 것을 얻으면 우리는 활홀경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그것을 잃을지 모른다고 불안해한다.

그리고 실제로 읽으면 절망한다! 

이런 집착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에고와 더 높은 자아의 차이를 스스로 상기해야 한다.

에고의 목소리는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지배하려고 한다.

"내가 가진 것, 내가 행하는 것,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곧 나다."

그러나 에고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고요히 머물 수 있다면 신의 목소리가 이런 메시지와 함께 나타날 것이다.

"이런 것들은 결코 너에게 행복을 줄 수 없어. 그것들은 허상일 뿐이야. 내가 너의 평화의 유일한 원천이야.

이것은 나의 가장 높은 자아가 하는 마리야. 집착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한 영적 해결책이야."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다. 스스로 그것을 다시 프로그래밍하고 영원히 낮은 에너지 상태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다. 기억하라,

집착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집착은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환영에 불과하고 당신이 실재한다고 믿을 뿐이다. 집착이 없는 상태에 축복 속에 사는 일은 정말로 가능하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이 있어야만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지 말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연습을 하라.

그런 말과 생각을 일몰과 하늘을 나는 새와 꽃이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을 대하는 태도로 바꾸어라.

당신은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것이다.

그것들에 어떤 요구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둘 것이다.

집착하지 않은 상태로 그것들을 즐길 것이다.

이렇게 하라.

그러면 필요한 것을 가지지 못했다는 느낌 때문에 생기는 절망이 힘을 잃고 사라질 것이다.

집착을 제거하려면 그것을 단순히 내려놓아야 한다.

당신이 불행한 이유가 당신의 삶에 특정한 사람이나 물견이 결핍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틀렸음을 거듭 상기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불행과 절망은 생각에 불과하다.

당신이 집착하는 모든 대상을 포기하지 않은 채 그것을 간직하고 사랑할 수 있다.

당신은 근본적인 방식으로 사랑하며, 평화롭고 위협받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무조건적으로, 집착하지 않으면서 당신을 사랑한다.

간단히 말해서, 절망을 몰아내는 방법은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pp.254~256.

 

해마다 섣달 그믐날(12월 31일)이 되면 일본의 우동집들은 일년중 가장 바쁩니다.
삿포로에 있는 우동집 <북해정>도 이 날은 아침부터 눈코뜰새 없이 바빴습니다.

이 날은 일 년중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밤이 깊어지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졌습니다.

그러더니 10시가 지나자 손님도 뜸해졌습니다.
무뚝뚝한 성격의 우동집 주인 아저씨는 입을 꾹 다문채 주방의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그리고 남편과는 달리 상냥해서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은 주인여자는, 임시로 고용한 여종업원에게 특별 보너스와 국수가 담긴 상자를 선물로 주어 보내는 중이었습니다.
'요오코 양, 오늘 정말 수고 많이 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네, 아주머니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요오코 양이 돌아간 뒤 주인 여자는 한껏 기지개를 펴면서, '이제 두 시간도 안되어 새해가 시작되겠구나. 정말 바쁜 한 해였어.'하고 혼잣말을 하며 밖에 세워둔 간판을 거두기 위해 문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출입문이 드르륵, 하고 열리더니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섰습니다.

여섯 살과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사내애들은 새로 산 듯한 옷을 입고 있었고, 여자는 낡고 오래 된 체크 무늬 반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주인 여자는 늘 그런 것처럼 반갑게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자는 선뜻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 머뭇 말했습니다.

'저…… 우동…… 일인분만 시켜도 괜찮을까요?……'

~~~~~~~~~~~~~~

뒤에서는 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다 늦은 저녁에 우동 한 그릇 때문에 주인 내외를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해서 조심스러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주인 아주머니는 얼굴을 찡그리기는커녕 환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네. 자, 이쪽으로.'

난로 바로 옆의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주인 여자는 주방 안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여기, 우동 1인분이요!'

갑작스런 주문을 받은 주인 아저씨는 그릇을 정리하다 말고 놀라서 잠깐 일행 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다가 곧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우동 1인분!'

그는 아내 모르게 1인분의 우동 한 덩어리와 거기에 반 덩어리를 더 넣어서 삶았습니다.
그는 세 사람의 행색을 보고 우동을 한 그릇밖에 시킬 수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 여기 우동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가득 담긴 우동을 식탁 가운데 두고, 이마를 맞대며 오순도순 먹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계산대 있는 곳까지 들려왔습니다.

'국물이 따뜻하고 맛있네요.'

형이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습니다.

'엄마도 잡수세요.'

동생은 젓가락으로 국수를 한 가닥 집어서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비록 한 그릇의 우동이지만 세 식구는 맛있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윽고 다 먹고 난 뒤 150엔(한화 약 1,500원)의 값을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사람에게 주인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후, 새해를 맞이했던 <북해정>은 변함없이 바쁜 날들 속에서 한 해를 보내고 다시 12월 31일을 맞이했습니다.

지난해 이상으로 몹시 바쁜 하루를 보내고 10시가 지나 가게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두 명의 사내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주인 여자는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체크 무늬의 반코트를 본 순간, 일년 전 섣달 그믐날 문 닫기 직전에 와서 우동 한 그릇을 먹고 갔던 그 손님들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여자는 그 날처럼 조심스럽고 예의바르게 말했습니다.

'저…… 우동…… 1인분입니다만……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주인 여자는 작년과 같이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기 우동 1인분이요!' 주방 안에서, 역시 세 사람을 알아 본 주인 아저씨는 밖을 향하여 크게 외쳤습니다.

'네엣! 우동 1인분!'

그러고 나서 막 꺼버린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습니다.

물을 끓이고 있는데 주인 여자가 주방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속삭였습니다.

'저 여보, 그냥 공짜로 3인분의 우동을 만들어 줍시다.'

그 말에 남편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안돼요. 그렇게 하면 도리어 부담스러워서 다신 우리 집에 오지 못할 거요.'

그러면서 남편은 지난해처럼 둥근 우동 하나 반을 넣어 삶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는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보, 매일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인정도 없으려니 했는데 이렇게 좋은 면이 있었구려.'

남편은 들은 척도 않고 입을 다문 채 삶아진 우동을 그릇에 담아 세 사람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식탁 위에 놓인 한 그릇의 우동을 둘러싸고 도란도란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주방 안의 두 부부에게 들려왔습니다.

'아…… 맛있어요……'

동생이 우동 가락을 우물거리고 씹으며 말했습니다.

'올해에도 이 가게의 우동을 먹게 되네요.'

동생의 먹는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던 형이 말했습니다.

'내년에도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머니는 순식간에 비워진 우동 그릇과 대견스러운 두 아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이번에도, 우동값을 내고 나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향해 주인 내외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말은, 그날 내내 되풀이한 인사였지만 주인 내외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크고 따뜻함을 담고 있었습니다.

다음 해의 섣달 그믐날 밤은 어느 해보다 더욱 장사가 잘 되는 중에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북해정>의 주인 내외는 누가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밤 9시 반이 지날 무렵부터 안절부절 못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0시가 지나자 종업원을 귀가시킨 주인 아저씨는, 벽에 붙어 있던 메뉴를 차례차례 뒤집었습니다.

금년 여름부터 값을 올려 <우동 200엔>이라고 씌어져 있던 메뉴가 150엔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2번 식탁 위에는 이미 30분 전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여졌습니다.

이윽고 10시 반이 되자,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머니와 두 아들, 그 세사람이 들어왔습니다.

형은 중학생 교복,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고 있던 점퍼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습니다.

두 형제 다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는데, 아이들의 엄마는 여전히 색이 바랜 체크 무늬 반코트 차림 그대로 였습니다.

'어서 오세요!'

역시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주인 여자에게 어머니는 조심스럽고 예의바르게 물었습니다.

'저…… 우동…… 2인분인데도…… 괜찮겠죠?'

'넷!…… 어서 어서 자, 이쪽으로……'

세 사람을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주인 여자는 거기 있던 <예약석>이란 팻말을 슬그머니 감추고 주방을 향해서 소리쳤습니다.

'여기 우동 2인분이요!'
그 말을 받아 주방 안에서 이미 국물을 끓이며 기다리고 있던 주인 아저씨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네! 우동 2인분, 금방 나갑니다!'.
그는 끓는 국물에 이번에는 우동 세 덩어리를 던져 넣었습니다.
두 그릇의 우동을 함께 먹는 세 모자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어느 해보다도 활기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방해될까봐 조용히 주방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주인 내외는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서로에게 미소를 지으며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평소에는 무뚝뚝하던 주인 아저씨도 이 순간만큼은 기분좋게 웃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의 대화는 계속되었습니다.
'시로도야, 그리고 쥰아 오늘은 너희 들에게 엄마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고맙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형인 시로도가 물었습니다.
어머니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킨 사고로 여덟명이나 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잖니?.
일부는 보험금으로 보상해 줄 수 있었지만 보상비가 모자라 그만큼 빚을 얻어 지불하고 매월 그 빚을 나누어 갚아왔단다.'
'네…… 알고 있어요.'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주인 내외는 주방 안에서 꼼짝않고 선 채로 계속해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빚은 내년 3월이 되어야 다 갚을 수 있는데, 실은 오늘 전부 갚았단다'.
'네? 정말이에요 엄마?'
두 형제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래, 그 동안 시로도는 아침 저녁으로 신문 배달을 열심히 해 주었고, 쥰이는 장보기와 저녁 준비를 매일 해 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단다.
그것으로 나머지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던 거야.'
'엄마, 형! 잘됐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저녁 식사 준비는 제가 계속할 거예요.'
'저도 신문 배달을 계속할래요! 쥰아, 우리 힘을 내자!'
형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어머니는 아이들의 손을 움켜쥐며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그걸 보며 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지금 비로소 얘긴데요, 쥰이하고 제가 엄마한테 숨긴 게 있어요.
그것은요…… 지난 11월에, 학교에서 쥰이의 수업을 참관하러 오라는 편지가 왔었어요.
그리고 쥰이 쓴 작문이 북해도의 대표로 뽑혀 전국 작문 대회에, 출품하게 되어서 수업 참관일에 그 작문을 쥰이 읽기로 했다고요,
하지만 선생님이 주신 편지를 엄마께 보여드리면…무리해서 회사를 쉬고 학교에 가실 것 같아서 쥰이 일부러 엄마한테 말을 하지 않고 있었대요.
그 사실을 쥰의 친구들한테서 듣고…제가 대신 참관일에 학교에 가게 됐어요'.
어머니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조금 놀랐지만 금방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랬었구나…… 그래서?……'
'선생님께서 작문 시간에, 나는 장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쓰게 했는데 쥰은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서 냈대요.
지금 그 작문을 읽어 드리려고 해요.
사실 전 처음에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만 듣고는, 여기 '북해정'에서의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쥰 녀석, 무슨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썼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쥰이의 작문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자, 지금부터 읽어드릴게요.'
시로도는 그러면서 교복 상의 주머니에 접어서 넣어 두었던 종이 두 장을 꺼내어 펼쳤습니다.
쥰의 작문을 읽어 내려가는 시로도의 목소리는 작지만 낭랑하게 우동 가게에 울려 퍼졌습니다.

 

'우리 아빠는 운전을 하다 교통 사고를 내서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데 피해자들 모두에게 보상을 해주기 위해선 보험금으로도 부족해서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그 때부터 우리 가족의 고생은 시작되었다.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셨고, 형은 날마다 조간과 석간 신문을 배달해서 돈을 벌었다.
아직 어린 나는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엄마와 형은 나에게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했다.
대신 나는 저녁이면 시장을 봐서 밥을 해놓는 일을 했다.
내가 해 놓은 밥을 엄마와 형이 맛있게 먹는 걸 볼 때 나는 행복하다.
나도 우리 식구를 위해 작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빚을 하루라도 빨리 갚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절약하는 생활을 했다.
엄마의 겨울 코트는 아주 오래 되어 낡고 헤어졌지만 해마다 꿰매어 입으셔야 했다.
그러던 중에 재작년 12월 31일 밤에 우리 가족은 우연히 한 우동 가게를 지나치게 되었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우동 국물의 냄새가 그렇게 맛있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우리 형제의 마음을 알았는지 엄마는 우리에게 우동을 사 주시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이 반갑고 고마웠지만 우리 형편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가게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형과 나는 망설이다가 딱 한 그릇만 시켜서 셋이서 같이 먹자고 엄마한테 말했다.
한 그릇이라도 우리에게 우동을 먹이고 싶었던 엄마와, 우동 국물 냄새에 마음이 끌린 우리 형제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문 닫을 시간에 들어와 우동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는 우리가 귀찮을 텐데도 주인 내외는 친절하고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주인 내외는 양도 많고 따뜻한 우동을 우리에게 내놓았다.
그러고나서는 문을 나서는 우리에게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하며 큰소리로 말해 주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우리에게,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그 후 일 년이 지난 작년 섣달 그믐날에도 그 우동 가게를 찾아갔다.
여전히 우리는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우동은 한 그릇밖에 시킬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날도 마찬가지로 주인 내외는 친절하고 따뜻하게 우리에게 우동을 대접해 주었다.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인사도 여전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힘들어 보이는 손님에게 '힘내세요! 행복하세요!' 하는 말 대신 그 마음을 진심으로 담고 있는 ' 고맙습니다!' 하고 말해줄 수 있는 일본 최고의 우동 가게 주인이 되겠다고.'
주방안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주인내외의 모습이 어느새 보이지 않았습니다.
형이 동생의 작문을 읽어 내려가는 사이 두 사람은 그대로 주저앉아 한 장의 수건을 서로 잡아당기며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시로도는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쥰이 사람들 앞에서 이 작문 읽기를 마치자 선생님이 저한테, 어머니를 대신해서 인사를 해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너는 어떻게 했니?'
어머니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형에게 물었습니다.
'갑자기 요청 받은 일이라서 처음에는 말이 안 나왔어요……
그렇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말했어요.
여러분, 항상 쥰과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맙습니다……
작문에도 씌어 있지만 동생은 매일 저녁 우리 집의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방과 후 여러분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도 도중에 돌아와야 하니까 동생은 여러분들한테 몹시 미안해 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동생이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읽기 시작했을 때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펴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고 있는 동생을 보는 사이에, 한 그릇의 우동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한 그릇의 우동을 시켜주신 어머니의 용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형제는 앞으로도 힘을 합쳐 어머니를 보살펴 드릴 것입니다.
여러분, 앞으로도 쥰과 사이좋게 지내 주세요.'
시로도의 말이 끝나자 어머니는 두 형제를 대견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세 사람은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습니다.
다정하게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무슨 이야기인가 나누며 웃다가 서로의 어깨를 다독여 주기도 하고, 작년까지와는 아주 달라진 즐거운 그믐밤의 광경이었습니다.
올해에도, 우동을 맛있게 먹고 나서 우동 값을 내며 '잘 먹었습니다.'라고 머리를 숙이며 나가는 세 사람에게 주인 내외는 일 년을 마무리하는 커다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큰소리로 인사하며 배웅했습니다.
다시 일 년이 지나 섣달 그믐날이 되자 <북해정>의 주인 내외는 밤 9시가 지나고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을 2번 식탁에 올려놓고 세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2번 식탁을 비워 놓고 기다렸지만 세 사람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북해정>은 장사가 잘 되어, 가게 내부 장식도 멋지게 꾸미고 식탁과 의자도 새로 바꿨지만 2번 식탁만은 그대로 남겨 두었습니다.
단정하고 깨끗하게 놓여져 있는 식탁들 가운데에서 단 하나 낡은 식탁이 중앙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이런 게 여기에 있지?' 

 

'낡은 이 식탁은 이 가게에 어울리지 않아.'
이렇게 의아스러워하는 손님들에게 주인 내외는 '우동 한 그릇'의 사연을 이야기해 준 뒤 이렇게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식탁을 보면서 그 때 그 사람들에게 받았던 감동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식탁은 간혹 손님들에 대한 배려와 따뜻함을 잃어가는 우리 내외에게 자극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날인가 그 세 사람의 손님이 와 주었을 때, 이 식탁으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는 '행복의 식탁'으로서, 손님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습니다.
일부러 멀리에서 찾아와 우동을 먹고 가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 식탁이 비기를 기다렸다가 우동을 먹고 가는 사람들도 있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이 찾아와 새롭게 결심을 다지고 돌아가기도 하는 등 그 식탁은 상당한 인기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후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섣달 그믐날이 되자 <북해정>에는, 이웃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이웃 사람들이 가게문을 닫고 모두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5, 6년 전부터 <북해정>에 모여서 섣달 그믐의 풍습인 <해 넘기기 우동>을 먹은 후 제야의 종소리를 함께 들으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게 하나의 행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밤도 9시 반이 지나자 생선 가게를 하는 부부가 생선회를 접시에 가득 담아서 들고 오는 것을 시작으로, 주위에서 가게를 하는 30여 명이 술이나 안주를 손에 들고 차례차례 모여들었습니다.
가게 안은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습니다.
그들 중 몇 명의 사람들이 2번 식탁을 보며 말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2번 식탁은 비워 두었구먼!'. '이 식탁의 주인공들이 정말 궁금하다고'.
2번 식탁의 유래를 그들고 알고 있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금년에도 빈 채로, 신년을 맞이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 내외는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은 비워 둔 채, 다른 식탁에만 사람들을 앉게 했습니다.
2번 식탁에도 앉으면 좀 더 여유가 있으련만 비좁게 다른 자리에, 모여 앉아 있으련만 비좁게 다른 자리에 모여 앉아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가게 안은 우동을 먹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각자 가져온 요리에 손을 뻗치는 사람, 주방 안에 들어가 음식 만드는 걸 돕고 있는 사람, 냉장고를 열어 뭔가를 꺼내고 있는 사람 등등으로 떠들썩했습니다.
이야기의 내용도 다양했습니다. 바겐세일 이야기, 금년 해수욕장에서 겪은 일, 돈 안내고 달아난 손님 이야기, 며칠 전에 손자가 태어났다는 할머니의 이야기 등으로 가게는 왁자지껄했습니다.
그런데 10시 30분쯤 되었을 때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입구로 쏠리며 조용해졌습니다.

코트를 손에 든 신사복 차림의 청년 두 명이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자,
다시 자신들이 나누던 이야기를 마저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게 안은 다시 시끄러워졌습니다.
'미안해서 어쩌죠? 이렇게 가게가 꽉 차서…… 더 손님을 받기가……'. 주인 여자는 난처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기모노를 입은 부인이 고개를 숙인 채, 앞으로 나오며 두 청년 사이에 섰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고 부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저…… 우동…… 3인분입니다만…… 괜찮겠죠?'.
그 말을 들은 주인 여자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변했습니다.
그 순간 10여 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밀어젖히고 오래 전 그 날의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들의 모습이 눈앞의 세 사람과 겹쳐졌습니다.
여주인은 주방 안에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 남편에게 방금 들어온 세 사람을 가리키면서 말을 더듬었습니다.

'저…… 저…… 여보!……'.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허둥대는 여주인에게 청년 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14년 전 섣달 그믐날 밤 셋이서 1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이곳을 떠나 외가가 있는 시가현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저는 금년에 의사 국가 시험에 합격하여 대학병원의 소아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 인사도 하고 아버님 묘에도 들를 겸 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우동집 주인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은행원이 된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저희 가족의 인생 중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니를 모시고 셋이서 이곳 <북해정>을 다시 찾아와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던 주인 내외의 눈에서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넘쳐흘렀습니다.
입구에서 가까운 거리의 식탁에 앉아 있던 야채 가게 주인이 처음부터 쭉 지켜보고 있다가, 급한 마음에 우동가락을 꿀꺽 하고 삼키며 일어나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외쳤습니다.
'여봐요 주인 아주머니! 뭐하고 있어요?.
10여 년간 이 날을 위해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기다린,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이잖아요, 어서 안내해요 안내를!'
야채 가게 주인의 말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여주인이 그제야 세 사람에게 가게 안의 2번 식탁을 가리켰습니다.
'잘 오셨어요.… 자, 어서요.…… 여보! 2번 식탁에 우동 3인분이요!'.
주방 안에서 얼굴을 눈물로 적시고 있던 주인 아저씨도 정신을 차리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네엣! 우동 3인분!'
그 광경을 지켜보며 가게 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환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습니다.
가게 밖에는 조금 전까지 흩날리던 눈발도 그치고, <북해정>이라고 쓰인 천 간판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칭기스 칸은 자신이 세상에 어떤 이미지를 남기고 간다고 생각했을까?

상상해보기 어려운 일이다. 칭기스 칸이 자신을 어떻게 보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민하지 알 시라지 주즈자니의 연대기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주즈자니는 칭기스 칸이 저주를 받았다고 하면서, 그가 죽어 지옥으로 내려갔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주즈자니는 한 이맘이 이 악명 높은 정복자와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이 성직자는 칭기스 칸의 조정에서 일을 했으며, 자신의 오만한 주장에 다르면 몽골의 칸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어느 날 그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칭기스 칸은 "내가 사라진 뒤에도 세상에는 위대한 이름이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칭기스 칸이 중국의 한 도교 승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가 말년에 이르러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좀더 잘 알 수 있고, 또 그의 속마음도 어느 정도 들여다볼 수 있다.

이 특별한 편지는 그 노승의 제자 몇 명이 사본으로 남겼다.

주로 행동과 한 말을 기록한 『몽골 비사』와는 달리 이 편지에는 칭기스 칸 자신에 대한 분석이 담겨 있다.

이 편지는 어떤 시기 - 몽골 왕궁과 동행하던 키타이(거란) 사람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 가 기록한 고전 한문의 형태로 남아 있지만, 칭기스 칸 자신의 감정과 인식을 매우 분명하게 드러낸다.

칭기스 칸의 목소리는 소박하고, 분명하고, 상식적이다.

그는 자신의 적들이 쓰러진 것을 자신의 우월한 힘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나 자신에게는 특별한 자질이 없소."

그는 '영원한 푸른 하늘'이 "오만과 지나친 사치" 때문에 주변의 문명을 벌했다고 말했다.

칭기스 칸은 엄청난 부와 권력을 모았지만 계속 소박한 생활을 했다.

"나는 소 치는 목동이나 말을 모는 사람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있소. 우리는 똑같이 희생을 하고 똑같이 부를 나누어 갖소."

그는 자신의 이상들을 간략하게 요약했다.

"나는 사치를 싫어하오."

또 "나는 절제를 하고 있소."

그는 백성을 자식처럼 대접하려고 노력했으며, 재능 있는 사람들은 출신에 관계없이 형제처럼 대했다.

그는 자신과 관리들의 관계가 매우 긴밀하고 또 존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늘 원칙에서 일치를 보며,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결합되어 있소."

이 편지는 무슬림 세계 침공 전야에 보낸 것이고 한자로 적혀 있지만, 그가 자신을 그 두 지역의 왕국이나 문화적 전통의 상속자로 보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이전의 제국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은 제국을 딱 하나 꼽고 있는데, 그것은 그의 조상인 훈족의 제국이었다.

그가 무슬림이나 중국의 방식으로 통치를 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훈족으로부터 내려오는 방식, 초원의 제국에 어울리는 자기 나름의 통치 방식을 찾고자 했다.

칭기스 칸은 자신의 승리가 '영원한 푸른 하늘'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나의 소명이 중요했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의무도 무거웠다"고 말했가.

그러나 그는 자신이 평화 시에도 전시만큼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통치에 부족한 점이 있었을 것 같아 걱정이오.: 그는 나라를 다스리는 좋은 관리들이 배의 좋은 키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장군으로 일할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만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행정부에서 유능하게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은 찾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편지에서 칭기스 칸의 정치적 사고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칭기스 칸은 자신의 약점들을 인정한 뒤에 지상에서 자신과 자신의 사명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칭기스 칸의 주르첸(여진) 원정 - 초원지대를 벗어난 첫 번째 주요한 원정이었다 - 은 약탈을 위한 일련의 습격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원정이 끝난 뒤에는 속국을 세웠다.

그의 말을 듣다 보면 단순한 습격이나 교역망 통제보다 더 깊고 넓은 계획이 드러난다.

그는 자신이 역사상 다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하러 남쪽으로 갔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큰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전 세계를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시키는 일이었다.

그는 이제 부족의 족장이 아니었다.

그는 해가 뜨는 곳에서부터 해가 지는 곳까지 모든 사람과 모든 땅의 통치자가 되려했다.

 

pp.200~202.

 

 

12월에 주력할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생태책방 들녘의 마을'이고, 또 하나는 창작판소리 <달문, 한없이 좋은 사람>이다. 

드디어 완창 무대를 연다. 달문의 일생이 모두 담겼다.

2018년 달문이 주인공인 장편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를 출간했다.

2019년에 거칠게나마 판소리 사설 초고를 썼다.

이 사설에서 눈대목 세 군데만 뽑아 웹판소리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고, 서울과 제주와 진주에서

쇼케이스 공연을 가졌다.

그때도 용석이 멋지게 소리를 했지만, 달문의 일생을 모두 담지 못해 아쉬웠다.

그 사이 '창작집단 싸목싸목'을 통해 <가시리> <복돌복실> <한국 호랑이 왕대의 모험> <그래서 나는 기오리가 되었다>

<섬진강 도깨비> 등을 선보였다.

작창이나 무대를 함께 만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완창 무대를 2년 전에 하지 않고 지금 하게 된 것이 다행이란 생각까지 든다.

달문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을 돈화문 국악당에서 달라고 하여 몇 자 적었다.

제목은 '달문을 이해하기 위하여'로 정했다. 흑맥주나 한 병 마셔야겠다.

달문의 철괴무('이철괴'라는 기괴한 모습의 신선을 흉내내면서 추는 역동적인 춤)라도 떠올리면서.

좋은 사람으로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18세기를 살다 간 거지 광대 달문은 반전매력남이었다.

너무나 못난 얼굴로 멋진 춤을 췄고, 평생 거지였지만 공연으로 번 많은 돈을 나눠줬으며, 글 한 자 못 읽지만 지혜로운 자로 수많은 이들의 인생 상담을 했고, 중심에서 중요한 일을 하다가도 인기가 올라가면 문득 사라져 변방을 떠돌았다.

달문은 궁핍, 질병, 범죄에 노출되는 어려움 속에서 이기심을 극복하고 거리의 지혜를 터득한 인물이다.

자신을 친구라고 부르며 찾아오는 이들을 모두 환대했고,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돌려댈 뿐만 아니라 옷까지 다 벗어주며 손해를 감수했다.

무엇보다도 달문은 좋은 사람이면서, 맡은 일을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이었다.

판소리 <달문, 한없이 좋은 사람>은 착하디 착한 거지 광대의 일생을 따르면서, 관객들에게 어쩌면 불편하면서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달문에 비해 당신은 얼마나 좋은 사람이냐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이냐고.

 

pp.366~367.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겉보기에는 어느 정도 잘 살게 된 한국이 오래전 이미 지나온 시절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간혹 특정 국가의 사람을 함부로 가엾다거나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때도 있었다.

생김새나 치장이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세계의 공통어를 전혀 다루지 못한다는 이유로, 공공장소에서의 매너나 의식의 수준이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나는 그들을 경멸하거나 하등하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뒤늦게 나의 뇌리를 관통하는 꾸짖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같은 조건이었다면 우리는 결국 그들과 비슷하게 살았을 것이다.'라는 단순한 문장이었다.

누구에게나 지나온 시절이 있꼬 앞으로는 다가올 시절이 있듯이 같은 조건 하의 국가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비슷한 모습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다만 미리 앞서간 국가들이 뒤따라오는 국가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부유해졌다고 해서 가난한 시절의 역사가 삭제되진 않는다.

그 시절을 부정하고 뒤따라오는 자들을 차단하거나, 과거를 자양분으로 삼아 그들이 좀 더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보호해 주거나 그것도 아니면 방관하는 입장을 택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을 책임지는 한 사람으로서, 상대적으로 많이 벌 수 있는 한국에서 사람 이하의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더 이상 음지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쌍하다며 외면하는 사람들과,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고, 범죄 발생률이 높아진다며 추방하자는 사람들과, 인권을 보장해 주자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이런 의견들의 건너에는 이주 노동자들의 입장도 있다. 고국에서보다 많이 벌 수 있어서 고국의 누군가에게 더 많은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이거나, 그들을 위해서라면 온갖 수난을 견딜 수 있다는 희생정신이거나, 먼저 성장한 국가에서의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희망일 수도 있지 않을까. 성장의 속도와 차이가 입장의 대립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한국으로 오거나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때 직접적으로 그들을 대면한다.

그들을 단체로 태우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는 유독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손에는 여러 가지 선물들이 들려있다.

전자제품에서부터 식품까지 하나라도 더 가족들에게 가져다 주려는 마음들이 빼곡하다.

물론 일하는 입장에서는 그 많은 짐들이 반갑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버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서로의 입장을 알게 되면, 서로가 조금씩은 마음의 짐을 덜고 한 걸음씩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여행길이 아닌 마침내 고국으로의 귀향길에 오른 그들을 대할 때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젖어든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행동에 가식이 끼어들 틈이 사라진다. 아무리 노동의 강도가 버거운 날일지라도 마음이 시키는 행동에는 고됨이 없다.

모두들 각자의 사연으로 어딘가를 떠나 어딘가로 향한다.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는 사연도 있겠지만 영영 그럴 수 없는 사연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몸은 떠나지만 마음만큼은 떠나가는 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저 멀리서 맴돌다 뒤늦게 따라온다. 모든 게 다른 넓은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이지만 떠나고 돌아오는 사연들은 너무도 

닮아있다.

그들은 결국 모두 그리운 것으로 향한다. 그리운 것을 위하는 방향으로 향한다.

그래서 그들은 마침내 사람으로 향한다. 그 사람이 결국은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바로 우리가 국경 없는 시대에 진짜의 국경을 넘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pp.230~233.

 

이승욱 - 포기하는 용기
이제 우리가 타인을 인정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한번 생각해보지요.
당신은 어떤 사람을 인정하시나요?
남을 배려하고 사려 깊은 사람에게 끌리지 않나요?
지식과 교양을 쌓아 마음의 깊이가 있는 사람을 존경하지 않나요?
사회적으로 성공해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사람을 선망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런 잣대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인정하며, 바로 그 방식과 시선으로 자기 자신도 바라봅니다.
그런데 나는 평가나 선망 또는 무시 같은 잣대로 남들을 보면서, 정작 그들에게는 나를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 말아달라고 요구한다면?
이건 정당한가요?
자신은 왜 그런 시선으로 평가받으면 안 되나요?
자신이 없기 때문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라는 요구는, 타인을 평가하는 잣대를 자신에게 적용하니 스스로 보기에도 별 볼 일 없고 사랑할 수 없더라는 자기 고백에 다름 아닙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기 바라는 것은 유아적이고 상상계적인 발상입니다.
'어른'이 인정받는 것은 다른 차원이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인정할 건덕지'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먼저 사려 깊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의 학식을 연마해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돈을 벌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누군가가 가졌고 그를 인정한다면, 내가 그것을 가지면 스스로를 인정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나를 인정하겠다면서 정작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나를 사랑해야 돼'라고 자기암시만 하는 것은 자기 귀에 계속 거짓말을 속삭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신을 인정하기 위한 과정은 세상에 알릴 필요도 없고, 타인의 확인도 필요 없는 오로지 스스로에 대한 약속,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이행한 약속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정욕구의 메커니즘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결국 타인의 인정에 목매고 있지 않습니까.
저 역시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인정을 채우기 위해 헛된 노력을 거듭하기도 습니다.
하지만 저는 타인을 전제로 한 인정욕구의 구조를 넘어술 수 있는 '사건'을 스스로 만들었고, 결국 그 '과정'을 통해 저 자신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힘을 약간이나마 얻게 되었습니다.
나를 인정해주는 주체는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며, 인정의 순서도 역시 세상이 먼저가 아니라 나 자신의 기준과 근거가 먼저여야 합니다.
물론 우리 존재가 이미 타자를 기준에 놓고 자아를 형성했기에, 존재 인정의 주체와 순서를 바꾸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인정하기 위해 겪는 과정도 고통스럽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고통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합니다.
전자의 고통을 벗어나려면 반드시 타인이 있어야 합니다.
반면 후자는 오직 자신을 통해 삶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며,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과정입니다.
후자를 택했을 때 얻는 또 하나의 이득은 자신을 인정하게 됨으로써 역설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게 되며, 타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일 수도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로써 세상과 깊게 연대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까지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헛똑똑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남들의 인정에만 급급한 사람들 때문에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기를 성찰해 세상과 공감하는 경험이 없으며, 그저 세속적인 인정과 권력에만 탐닉합니다.
그들은 권력이, 돈이, 명예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보장해준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허망한 행위만 반복시킬 뿐입니다.
스스로를 인정하기 못하는 사람일수록 세속적인 허명虛名에 자신을 더 옭아매기 때문입니다.
존재가 불안할수록 허명에 목을 매게 되어 있습니다.
저 역시 제 존재가 불안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불안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세상의 허명을 좇지 않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불안의 고통 속으로 오히려 자신을 밀어 넣어본 한 번의 경험 덕분에, 불안을 느낄지언정 그 불안에 송두리째 휘둘리지는 않게 된 것 같습니다.
불안은 항시 찾아오지만 어느덧 제 오랜 친구가 되었고, 저는 그것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인정한 사람이 되면 불안을 잘 견녀낼 수 있고, 자기 삶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힘으로 타인의 삶도 도와줄 수 있습니다.
나를 인정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이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만이 인정할 수 있는 '그것' 하나를 갖추면 충분합니다.
누구의 인정도 바라지 않고, 세속적 보상이 없어도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낸 사람, 즉 자신을 지켜낸 사람만이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정이라는 무의식의 메커니즘을 분명히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드렸습니다.
너무 거창하고 너무 멀고 아득한 일이라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요?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모든 일은 그저 작은 한 걸음에서 시작됩니다.
자질구레한 짐과 가재도구로 꽉 찬 집에 이삿짐을 옮기려 들어온 아저씨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이던가요.
바로 눈앞에 있는 짐들부터 하나씩 바구니에 챙겨 넣는 것입니다.
저 멀리 까마득한 산에 도달하게 하는 것도 바로 처음 한 걸음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잘 아시잖아요.



제가 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가능한 한 깊이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구조가 얼마나 복잡미묘하게 층층으로 겹쳐 있는지를 보곤합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사실 나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이 함께 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욕망이란 '동력'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이해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성공하고 싶다면, 그 동력(욕망)이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상담실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일상생활에서 깊은 얘기를 나눈 사람들과의 경험으로 미뤄보면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고통을 겪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타인, 남의 욕망은 대부분 부모의 욕망인 경우가 많습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면 부모들이 자녀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조수미 씨나 김연아 씨의 어머니처럼 강력한 욕망이라면 처음부터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사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부모의 욕망은 아주 은밀하고 '평범'해서 그것이 나의 욕망인지 부모의 욕망인지 구분해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타자의 욕망'과 '주체의 욕망'을 구분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타자의 욕망은 실현해낼수록 소진되고 맥이 빠진다는 것입니다.
남의 욕망을 내가 대신 이루었으니 힘이 빠지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을까요.
성공에 대한 욕망이 자신의 것인지, 타자의 욕망을 자기 것으로 오인해서 실현시키려는 것인지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많은 불행이 거기에서 비롯되었다면 내 욕망의 주체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욕망과 타자의 욕망을 구분해내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정말 알차게 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니까요.
자, 이제 다시 좀 더 일상적인 현실로 돌아와서 성공과 욕망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가 가지려는 직업이나 성취하려는 목표는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습니까?
아마도 대부분 사회적 영향을 받습니다만, 그중에서도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대체로 부모들입니다.
물론 부모님들도 사회적 영향을 받았겠지만요.
최근에 저는 어느 지방자치단체의 요청으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만나서 장래희망을 물어보았더니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공무원'이라고 대답하더군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대부분 부모님이 그게 제일 좋다고 했기 때문이랍니다.
이것이야말로 타자의 욕망을 따라 하는 전형적인 예시죠. 아이들 말고요, 그 부모들 말입니다.
부모들은 자녀의 '안정된 미래'를 위해 공무원이 되라고 하지만, 나중에도 그 직업이 좋은 직업으로 남아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자기 확신이 없는 상태로 남의 욕망만 믿고 따라 한다는 것은, 심하게 말해 얼마를 잃을지 모르는 내기에 자신을 투기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나아가 부모의 요구를 주체적인 시각으로 심각하게 검토해볼 이유가 있습니다.
자녀에게 '안정된 미래'를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부모의 지금 삶이 불안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만족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나는 만족한 삶을 원해'라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의 현재 삶이 불안하니 그 불안을 자녀에게 투사해 불안을 감소시키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누그러뜨리려는 것이죠.
이렇게 강요된 목표가 아이들의 삶의 지표가 될 리 있을까요?
그럴 리도 없지만,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정말 비극이겠죠.
아이들의 미래를 부모가 결정하고 있으니 말입니다.제가 이 자리에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성공에 대한 정의입니다.
성공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대기업 임원이 되면 성공입니까?
재산을 많이 모으면 성공인가요? 권력을 가지면 좋을까요?
만약 이 세 가지를 다 가진 사람이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세속적 성공과 개인적 불행을 등치시키려는 말이 아닙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성공이 다 다를 수 있는데, 우리 한국사회는 자기 기준에 의거한 성공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더 중시합니다.
욕망도 내 욕망이 아니고 성공의 잣대도 내 것이 아닌 사람에게, 성공이라는  것은 환상을 넘어 허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 성공하고자 한다면, 먼저 성공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을 확립하는 '성공'을 먼저 경험해야 합니다.
그 과정은 자신의 욕망을 면밀히 검토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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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4가지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질문1.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나는 나 자신에게 인정받을 만한 괜찮은 사람인가?"라고 쉽게 생각해요.
책이 던진 첫 번째 화두는 '인정'과 '인정욕구'입니다.
인간이 처음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대상이 자신이 아닌 타인이라는 점이 인간 최초의 비극이라 합니다.
타인은 부모에서 출발하여 성장 과정을 거치며 자신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자신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마저도 타인이 되는 사회 구조를 지적합니다.
타인의 인정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정욕구를 충족시키는 기준은 "자신"이 만든 자신을 "인정할 건덕지"라고 합니다.
'자기 인정욕구'가 충족되면 타인의 시선이 유발하는 존재의 불안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질문2. 나는 누구로 사는가?
이 질문은 "가족, 집단 내에서 어떠어떠한 역할의 가면이 아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고 있는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네요.
삶의 의미를 타인을 통해 확인하지 말고,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것을 실천하라고 합니다.
어떠한 역할을 통해서 완벽한 행복을 꿈꾸는 자신을 포기하라고 합니다.
책은 자기애적 성향의 사람, 자기연민이 강한 사람을 소개하며 완벽한 행복을 꿈꾸는 불안한 당신을 불안의 원천에서 해방시키려 합니다.
이 과정을 위해서는 '결정'과 '행동' 즉, 결행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직접 발견할 수 있다고 보네요.



질문3. 나는 왜 불안한가?
"나를 불안하게하는 것들을 당당히 직면할 수 있는가?"로 쉽게 생각해보죠.
책은 죽음 혹은 비존재(생물학적 죽음), 책임을 동반한 선택의 자유, 성공을 불안의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죽음은 죽음 자체가 아닌 죽음으로의 과정을 두려워하는 것이며, 외면, 무시와 같은 생물학적 죽음(왜 사회적 죽음이 아닌 생물학적 죽음이라 하는지는 모르겠네요)은 다른 이들에게 죽음을 비롯한 생물학적 죽음을 환기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외면당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들을 직면하라고 합니다.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고 합니다.
선택을 필요로 하는 자신 또는 관계 사이의 숨은 그림자(난 돈벌어올께 넌 현모양처가 되어줘....와 같은)와 자신이 전가했던 책임의 본질과 서로 대면해야만, 선택으로 인한 불안에서 자신 또는 자신과 상대방을 위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성공의 경우,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와 이유는 타인이 아닌 자신의 것이어야 하고, 그 성공의 기준도 타인이 아닌 자신이 제시한 성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인이 개입되면 불안해진다는 것이죠.



질문4. 나는 타인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나와 타인과의 관계는 건강한가?"에 대한 즉, 나와 타인의 관계를 점검해 볼 수 있는 질문입니다.
책은 공생, 의존, 우울, 회피애착 관계를 통해서 설명합니다.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과거를 냉철히 돌아보며, 자신이 관계 맺는 방식으로 형성된 관계들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맺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 부분은 실질적인 상담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암묵적으로 독자 자신이 대입해서 읽기를 바라고 있습니다(책의 다른 사례도 쌤쌤).
모든 사람들 아니 최소한 '포기하는 용기'라는 책을 집어든 독자라면 책이 소개하는 사례의 인간적 성향, 자아 형성의 면모들을 조금씩이라도 공유하지 않을까요?(이 부분은 여기서 몇줄로 끄적일 내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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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책이 나에게 한마디 한다면,
너 자신을 위로할 정도의 노력은 했을지 몰라도 스스로 "감동"을 받을 만큼 노력하지 않은 너의 현재의 모습을 인정해!
평탄한 삶을 원하지만 그래도 남들보다는 조금은 화려한 삶을 원한다면, 너는 계속해서 남들의 시선에 의존한 성공과 평탄하다 말하지만 실질은 "너에게만은" 완벽한 삶을 이루려는 욕망에 쌓여 그 욕망이 가져오는 불안을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 할 거야!!
그리고 그런 불안들 속에서는 너 자신을 발견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을 거야!
너무 비약이 심했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을 주네요.
책이 전하는 말 한마디가 일회용 '뽕'인지 아닌지, 말 한마디에 바뀌는 터무니없는 삶을 만드는지는 제가 결정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렸겠지요?
자신을 뒤돌아 보고, 앞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선택할 결과들에 대해서 무엇을 선택하지 않았음을 성찰하며 책임지는 인생을 살기를 바래봅니다.
마지막에 말하는 초라함을 이해하시나요?
" 아, 나는 참 초라하다. 초라한 제 삶이 저를 믿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삶이 지니는 특징은, 일반적으로 서로를 타고난 신뢰로 대한다는 것이다.

진즉부터 아는 사이가 아니라 완전히 낯선 사람들끼리도 그렇다.

우리는 일부 특별한 상황에서만 낯선 이를 처움부터 불신한다.

(……) 우리는 애초부터 서로의 말을 믿는다.

애초부터 서로를 신뢰하는 것이다.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의미의 일부다.

그렇지 않고서는 인간의 삶 자체가 존재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예 우리가 살 수가 없다.

우리가 미리부터 서로를 불신한다면, 우리가 출발점에서부터 상대방이 도둑질하고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 의심하고 나선다면 인간의 삶은 삐걱대고 말라 죽을 것이다. (……)

그렇지만 신뢰는 자기 자신을 열어놓는 것이다.

덴마크의 철학자이자 신학자 K. E. 로이스트루프는 신뢰가 인간 실존의 기본 특징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지적은 분명 정확하다.

선천적인 신뢰가 없다면 인간은 성장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모두가 똑같은 정도로 남들을 믿지는 않는다. 불신을 타인이 나를 배신할 것이라는 믿음과 연결 지을 필요는 없으며 차라리 타인이 나를 좋아하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정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남들은 전반적으로 잘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타인을 꼭 사악하게 본다기보다는 '위험하다' - 자기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 고 생각한다 하겠다.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이들이 개인적인 정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부정적 반응이 두렵기 때문이요, 다른 사람들이 그 정보를 퍼뜨릴까 봐 두렵기 때문이리라.

이 가설은 외로운 사람들은 사교술이 부족할 것이라는 가설과 완전히 별개다.

또한 두려움과 불신은 스스로를 지속시킨다. 불신은 더 큰 불신을 조성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애초에 불신을 품은 개인은 타인을 신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상황으로부터 고립되기 때문이다.

외로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사회적 환경을 훨씬 더 위협적으로 지각한다.그리고 이 두려움은 다시 두려움을 완화할 수도있을 바로 그것, 즉 인간적 접촉을 방해한다. 사회적 두려움은 타인들과 직접 접촉하는 데 방해가 되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망친다.

신뢰가 부족하면 외로움이 생기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아니면, 신뢰 부족과 외로움이 상호 강화 관계에 있는가?

확실히 규정하기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외로움 때문에 사람을 못 믿는다기보다는 낮은 신뢰 수준이 외로움을 낳는다는 가정이 더 타당해 보인다.

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연구에서는 낯선 사람을 믿어선 안 된다고 교육받은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서 외로움을 더 많이 경험한다는 것을 입증했는데, 특히 이러한 영향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진중한 신뢰는 늘 위험에 대한 자각과 함께하므로 일말의 불신을 포함한다.

진중한 신뢰는 분명한 선을 두고 그때그때의 사정을 참작한다.

진중한 신뢰는 자기가 어떤 위험을 무릅쓰거나 상처받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인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신뢰를 보여줄 때 그러한 노출 혹은 취약성이 약용당하지 않을 거라고 추정한다.상대를 믿을 때는 상대를 믿지 않을 때에 비해 상대의 말과 행동을 훨씬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한다.

반면, 불신하는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나쁜 쪽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상호 의존을 배울 수 있는 인간관계에 진입하기가 힘들다.

여러분이 남들을 잘 믿지 못한다면 상호 작용을 제한할 수밖에 없을 것이요,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믿을 만하지 않다는 여러분의 생각을 뒤엎을 기회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불신은 자기를 벗어나 밖으로 뻗어나가는 데 방해가 된다. 그런 사람에게는 외로움이 따라올 가능성이 아주 크다.

 

pp.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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