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모든 인류학자가 이런 추세를 인류학의 승리로 생각한 것은 아니다.

사실은 전혀 아니었다.

EPIC(산업민족지학회담, Ethnographic Praxis in Industry Conference)이 영향력을 키우기는 했지만 일부 인류학자는 기업에서 일한다는 개념 자체를 싫어했다.

인텔의 인류학자 케이시 키트너가 인도로 떠난 연구 여행에서 '트립'이라는 학자와 만난 에피소드가 현실을 보여준다.

어느 밤에 트립과 키트너는 함께 담배를 피우면서 대화를 나눴다.

"트립이 담배를 깊이 빨면서 물었다.

'어떻게 인류학자이면서 인텔 같은 데서 일해요?'

키트너는 트립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았다.

기업이 당신의 영혼을 빨아먹지 않냐?

기업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의 삶을 파는 일이 혐오스럽지 않냐?

지본주의라는 짐승의 배꼽에서 일하면 어떤 기분이냐?

어떻게 그렇게 비윤리적인 조건에서 일할 수 있냐? 신념을 버리는 게 아니냐?"

 

키트너는 "아니"라고 답했다. 키트너는 인텔에서 일하는 것은 엔지니어들이 사람들에게 공감하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믿었다.

또 벨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사람들에게 기술은 캘리포니아의 20대 백인 남자들을 위해서, 20대 백인 남자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인류학자들 사이에는 불편감이 여전하다.

비즈니스 인류학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그들의 방법론이 희석되어 결국에는 사용자 경험(USX 혹은 UX) 연구, 인간 컴퓨터 상호작용(HCI), 인간 중심 설계, 인간 요인 공학 등에 흡수될까 봐 불안해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인류학자들이 기업에서 일하면서 변화하는 기업의 분위기에 휩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인텔도 예외는 아니었다.

21세기의 첫 10년간 인텔은 발 빠르게 인류학자들을 고용하고 인류학 연구를 활용해 고객을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두 번째 10년의 중반에 구조조정이 일어나면서 인류학자들이 여러 사업 부문으로 흩어진 데다 그 수도 감소했다.

부분적으로는 인텔의 고객사들이 자체적으로 민족지학자들을 고용하고 인텔이 더 이상 PC 위주의 단일한 생태계 중심에 있지 않다는 것이 원인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시아의 경쟁사들이 반도체 칩 부문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바람이 인텔이 전략적 난관에 부딪힌 것도 원인이었다.

실제로 2020년 말에 인텔은 활동가들의 표적이 될 만큼 상황이 심각했다. 

 

이론상으로는 인텔이 혁신적으로 사고하면서 앞을 내다보고 미래를 상상하고 기업 안팎의 문화적 패턴을 분석할 사람을 고용해야 할 필요성이 감소하기는커명 오히려 늘어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인텔 경영진은 (같은 처지에 몰린 거의 모든 기업과 마찬가지로) "비목적

(non-core)" 사업 부문을 축소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처음에서 시작한 곳에서 멀리도 오셨군요."

벨과 통화하면서 내가 웃으며 말했다.

문득 어린 시절의 벨이 오스트레일리아 오지에서 애벌레를 먹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내가 오비사페드에서 보낸 시절을 떠올리며 '우리 둘 다 시작한 곳에서 멀리 왔네요' 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벨도 반박하지 않았다.

 

인류학자들이 처음에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을 연구할 때는 새로운 변경, 곧 '낯설어' 보이는 문화를 탐색했다.

인텔에서 벨은 싱가포르 지하 주차장과 같은 의외의 장소에서 유사한 목표를 추구했다.

이제 벨은 '낯섦'의 새로운 변경, 곧 인공지능을 탐색하고 있었다.

이 모든 노력을 이어주는 끈은 벨이 컴퓨터역사박물관에서 내게 말한 목표였다

바로 서구의 힘 있는 엘리트들에게 "그건 당신의 세계관이지 모두의 세계관이 아니다!"라고 말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경자들이 이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벨이 말했다.

엔지니어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말을 들어야 할 또 하나의 집단이 있다.

바로 정책 입안자들이다.

다른 관점을 무시하는 것은 세계화 시대의 비즈니스에 해롭다.

전염병의 위험, 특히 범유행의 위험과 싸우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pp.84~87.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가지 않은 길 / 피천득 옮김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The Road Not Taken /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u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I took the one less travel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프로스트 (Robert Lee Frost 1874∼1963)
미국 시인. 샌프란시스코 출생.
10세 때 아버지가 죽자 뉴잉글랜드로 이주, 버몬트의 농장에서 맑은 날은 일하고 비오는 날은

책을 읽는 생활을 하였는데, 그 경험을 살려 뒤에 이 지방의 소박한 농민과 자연을 노래함으로써

현대 미국 시인 중 가장 순수한 고전적 시인이라 할 수있다.

 

피천득 (皮千得 1910.5.29∼2007.5.25)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1991), 인촌상 문학부문(1995)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시집에 《서정시집(1947)》 《금아시문선(琴兒詩文選, 1959)》
《산호와 진주(1969)》 《피천득 시집(1987)》 《생명(1993)》 등이 있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바이러스 방역에 성공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한국이 방역에 상대적으로 성공한 것은 선진국이어서가 
아니라 헬조선이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인적, 물적 자원을 갈아 넣을 
수 있는 곳. 원하면 통신사 기지국을 통해 시민의 동선을 샅샅이 복구할 수 있는 곳.
와불(臥佛)처럼 달관하는 대신, 보란 듯이 살아남고야 말겠다는 결기를 가지고 너나 할 것 없이 추노꾼처럼 전력 질주하는 곳. 

 

이곳에 안온한 선진국형 게으름과 권태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헬까페'에 독한 위스키와 커피가 넘치듯이, 헬조선에는 독한 역동성이 넘친다.
사람들은 여전히 
밥을 사냥하듯이 먹고, 자신이 굴릴 돌을 앞장서 고르는 시시포스의 심정으로 직장을 고른다. 각자도생에 분투하는 동안 삶은 빨리 지나가고,  영혼은 간헐적으로나 존재한다.

 

역병에 이어 도래할 경제 위기에, 시시포스는 노역에서 해방, 아니 해고될 것이 두렵다.
비참하게 죽기 싫어하는 그 두려움을 연료 삼아 
예언자들이 설치기 시작한다.
역병을 예측하지 못했던 지식인들이 
매스컴에 나와 역병 이후의 미래를 예측하기 시작한다.
마치 '노멀'이 
존재했던 양 이제 '뉴노멀'을 말하기 시작한다.
정치인은 구원을 
약속하고, 정치의 팬덤화는 가속화되고, 지난 100년 동안 지속된 한국 론장의 굿판적 성격은 변함이 없다.
생각의 폐허를 가득 채운 
구호와 비난과 불안과 억울함과 집단 흥분 속에서 소종파 종교들은 번성한다.
탁지원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에 
따르면, 한국에는 현재 자신을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종교 지도자만 20여 명, 재림예수를 자처하는 이도 50명이 넘는다.

 

예언가들이 횡행하는 이곳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려면, 선진국에 대한 환상에 쉽게 의탁하거나, 자신을 연민하는 정신적인 울보가 되거나,달콤한 힐링을 섣불리 찾지 않는 것이 좋다.
솜사탕으로 이루어진 
사회 안전망과, 흔적기관 같은 인권 의식을 가지고 선진국 행세를 하는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지당하기만 한 도덕적 담론을 넘어서는 강철 같은 생각이 필요하다.
잘 다져진 절망과 희망을 안고 강철로 
이루어진 생각의 징검다리를 밟으며 죽을 때까지 의연하게 걸어가야 

한다.

 

그와 같은 길을 앞서 걸어갔던 미국의 의학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는. 죽음을 앞두고 <나의 삶>이라는 글을 썼다.
그 글에서 그는 
담담히 회고한다. 자신은 맹렬하고 폭발적이고 극단적인, 불같은 열정의 인간이었다고. 즉 그의 삶은 헬조선과 같았다고. 열정을 가지고 지옥을 통과한 그가 내린 인생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지각 
있는 존재(sentient being)이자 생각하는 동물(thinking animal)로서 이 아름다운행성에 살 수 있었다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특권(privilege)이며 모험(adventure)이었다." 

 

실로 생각은 침잠이 아니라 모험이며, 그것이야말로 저열함에서 도약할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이다.
타인의 
수단으로 동원되기를 거부하고,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일을 넘어, 타성에 젖지 않은 채, 생각의 모험에 기꺼이 뛰어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터전이 바로 생각의 공화국이다.

 

pp.295~298.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문제는 아득한 옛날부터 인류의 숙제였다.

정확한 답을 얻기 어려운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터의 영역에는 유용한 전략이 하나 있다.
바로 데이터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누가 데이터를 모았는지, 누가 보고했는지를 추궁하는 것이다.
또는 
내가 이 주제에 관한 기사에서 썼듯이, 데이터가 제시되었을 때 '누가 한 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요구해야 한다.데이터의 출처를 캐물으라는 말이다.
정보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면 정보의 진실성에 
관해 각자 나름의 결론을 내려버릴 수 있는 법이다.
(단 정보원에게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일부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실질적인 면에서 보자면, 이 말은 모든 신문과 웹사이트, 모든 저자와 정치인이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 말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우리가 확인해볼 수 있다.
적어도 시간과 마음만 있다면 확인할 수 
있다.
이 
전략이 모든 문제를 극복해내지는 못하겠지만(그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기 입장을 지지하는 정보를 선택하는 것을 막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유용한 전략이다.

 

'투명성'은 종종 다크 데이터, 최소한 사기와 속임수 사례에서 발생하는 다크 데이터에 대한 부분적인 해답으로 부각된다.

투명성이라는 개념의 요지는 공개된 것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기 쉽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볼 수 있으면, 사기 행위는 어려워진다.
서구 민주주의는 개방성을 
다양한 수준에서 매우 강조하며, 정부가 활동 내용을 자세히 발표하도록 권장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지방정부투명성법Local Government Transparency Code는 이렇게 말한다.

 

"투명성은 지방정부 책임성의 근본이며, 사회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도록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구와 정보를 제공하는 데 핵심 요소다.
데이터의 
가용성은 또한 지방 기업, 자원봉사 및 공동체 분야들과 사회적 기업들이 서비스를 운영하거나 공공 자산을 관리하도록, 새로운 시장을 열어줄 수 있다.
(…) 정부는 원칙적으로 
특별히 민감한 경우를 제외하고 지방 당국이 관리하는 모든 데이터를, 지역민들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다음 내용을 덧붙인다. 

 

“이 법은 지역민들에게 중요한 사안에 관해 돈이 어떻게 지출되는지 (…) 자산의 사용 (…) 의사결정 (…) 등을 다루는 데이터를 지역민들이 열람하고 접속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이를테면 그레이트맨체스터의 
테임사이드 자치구의 경우 매 분기마다 500파운드를  초과하는 지출 항목의 내역이 공개된다.
이 내역에는 공급자, 매장, 상품/서비스의 
설명, 수량, 날짜, 기타 내용이 들어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수준에서는 상황이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사생활을 보호하는 방향, 또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개인 데이터의 비밀주의 또는 숨김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2018년 
5월 25일, 2장에서 언급한 유럽연합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이 시행되었다.
이 
법은 개인 데이터를 저장하고 사용하는 기관에게 의무를 부과하며, 개인들에게, 자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사용될지에 관한 높은 수준의 권리를 준다.
개인 데이터는 데이터로부터 식별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개인과 관련된 데이터를 말한다.

 

GDPR은 기관에게 왜 데이터를 수집하고 사용하는지를 설명하라고 요구하며, 명확하고 자발적인 동의(또는 법적인 요건이라든가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조치 같은 다른 정당한 사유)를 요구한다.
개인은 자신의 데이터에 접근할 권리를 가지며, 아울러 자신의 데이터를 수정하거나 삭제하거나 다른 데이터 관리자에게 옮길 권한도 갖는다.
또한 이런 종류의 법적 요구는, 다량의 개인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업들에게 상당한 행정상의 부담을 안겨준다.

 

여담이지만 나는 투명성'이라는 단어를 사람들이 데이터 투명성을 놓고서 흔히 말하는 방식, 그러니까 '사람들이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음'을 가리킨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다른 관점도 존재한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해도 어떤 것을 통해서 다른 사물을 볼 수 있다면, 그것도 투명한 것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유리창과 안경은 투명하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진실을 말하자면, 가장 효과적인 사기와 속임수 기법들 다수가 그런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가 보고 있지 
않아도 상황은 벌어지고 있으며, 모든 게 괜찮아 보인다.
단 우리가 
균열을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 다음에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다.
이런 의미에서 
'투명성'은 데이터에 관한 한 '다크 데이터'와 불편한 유사성을 갖는다.

 

pp.276~278.

1965년 이후 미국의 일상은 바뀌기 시작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서로 더 단절됐다고 느꼈다.
하버드대의 교수이자 
정치학자인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이 자신의 저서에 쓴 것처럼 미국인들은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지 않기' 시작했다.
퇴근 후 저녁 
약속이나 모임, 다른 커뮤니티 행사의 참여율이 낮아졌다.
그 대신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소도시의 젊은이들은 더 밝은 미래를 
위해 대도시로 떠났다.
컨트리클럽 멤버십이나 호화로운 차를 
구입하고 하와이 같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경제적 차이가 두드러졌다. 로제토도 예외는 아니었다.

 

로제토만의 장점이었던 공동체 의식과 평등주의도 점점 퇴색됐다.

1971년 마을 역사상 처음으로 심장마비로 사망한 45세 미만의 주민이 나타났다.
연구원들은 계속 관찰하며 데이터를 수집했다.

30년간의 후속 연구 결과에 따르면, 로제토의 심장마비 발생률이 점차 이웃 마을과 비슷한 수치까지 증가했다. 장기적인 연구 결과는 원래의 '로제토 효과'가 건강에 긍정적인 사회적 유대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라는 것을 입증했다.

 

만약 사회적 유대가 로제토 효과의 원인이라면, 이것이 오키나와의 장수 비결을 설명할 수 있는 숨은 요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100세가 넘는 일본의 노인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많은 연구자들이 오키나와 주민들이 먹는 음식에 
집중했지만 장수의 비결을 알아내려면 그들의 식탁이 아닌 다른 곳을 살펴봐야 할지도 모른다.

 

식습관은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지중해 음식을 포장해서 혼자 먹는 것은 꽤 외로운 일이다.
점심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동안 
내가 웃거나 공동체 의식을 느낄 일은 거의 없다.
주문을 받는 
종업원이 내 음식을 주문하는 동안 그에게 오늘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그랬다면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점심을 먹으면서 온전한 
휴식을 취하거나 행복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고립된 상황에서 식사를 한다.

 

반면에 일본이나 이탈리아, 그리스, 프랑스 같은 곳에서 식사는 매우 사회적인 의식이다.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여러 세대가 함께 
어울려 한다.
하루의 중심이 되는 활동이다. 아이들은 가족들과 
손님들 사이에 함께 앉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는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먹는지다.
토스카나의 태양 아래서 먹는 식사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할 때 더 맛있는 법이다.

 

오키나와에서는 음식만 나눠 먹고 끝이 아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자주 한데 모인다. 함께 모여 생일이나 기념일 등을 축하한다.
그들은 
공동 목적을 위해 모임 안에서 상호부조 관습에 참여한다.
그리고 
함께 웃을 일이 많다.
오키나와의 100세가 넘는 노인들은 팝 밴드에 
가입하거나 가라테를 연습하고 증손주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이키가이ikigai'라고 부르는 삶의 원동력을 즐긴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오키나와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돌봐준다.
예를 들어 
고령자들은 하루에 몇 시간씩 자신보다 더 나이 많은 고령자들을 돌보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이 프로그램은 양쪽 연령대 모두에게 
좋은 사회적 경험이며 대부분이 고립된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미국 고령자들과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공중보건 연구자들에 따르면, 
오키나와나 유난히 장수로 유명한 마을들의 특징은 식단이 아니라 함께 식사하는 공동체에 있다.

 

pp.80~82.

혹시 당신도 이런 부류의 사람? 

오늘도 직장을 향해 오전 7시 정각에 집을 나선다.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따라,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같은 역에 내린 다음, 매번 같은 출구를 통해 빠져나간다.
그리고 퇴근길에는 출근길을 정확히 거슬러 간다.

 

이런 관성적 행동을 취하는 것은 당신 스스로 편안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복 행위는 시간 엄수는 물론 외부 위험으로부터도 안전하다. 

그러나 관점을 조금만 바꿔 평소보다 약간 빠르거나 늦게 출발해보자.

평소와는 다른 길로, 다른 교통기관을 이용하여 다른 정류장과 출구를 이용한다면 당신은 지금과는 완전히 새로운 자극에 노출될 것이다.

 

창의력의 소유자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일까?
굳이 난해하고 
까다로운 강호(江湖) 고수들의 의견을 빌릴 필요도 없다.
기존의 
습관이나 관념(고정관념)을 단숨에 깨뜨리는 유연한 사고와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 자신의 의지대로 뇌를 잘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창의력의 소유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관성적인 사고와 행동을 폐기하려는 노력이 중요하지만, 환경적인 뒷받침도 더없이 중요하다.

 

중국 붕속의 문장가인 구양수(歐陽脩)가 이르기를 훌륭한 시(詩)를 떠올리는 데는 '3상(三上)'이 최고라고 했다. 3상은 이걸 가리킨다.

 

- 마상(馬鞍): 말 위

- 침상(枕上): 침실

- 측상(厠上): 화장실

 

말 위는 지금의 시내버스나 지하철처럼, 적절한 흔들림이 존재해 끊임없이 뇌를 자극할 것이고, 침실은 하루 중 가장 조용한 곳이어서 심상에 도움이 되며, 화장실은 해우소(解憂所)라 불리는 만큼 갖은 근심과 번뇌가 사라지는 곳이어서, 새로운 발상을 촉진하게끔 도와준다.

 

또한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앱스타인(Robert Epstein)과 줄리안 제인스(Julian Jaynes)는 이런 말을 했다.

 

"3B에 있을 때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우수한 과학 및 수학적 발견은 3B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여기서 3B는 바로 이것이다.

 

- 버스(Bus)

- 침실(Bed)

- 욕실(Bath)

 

이 가운데 욕실(Bath)은 단순히 욕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장소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해수욕, 물놀이, 샤워, 
뱃놀이, 파도타기, 해변 산보, 빗속 사색 등을 들 수 있다.

 

이쯤 되면 눈치챘을 법하다. 결국 3상이나 3B는 모두 같은 얘기다.

탁월한 창의력을 이끌어내기 적합한 장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흡사하다.
이는 인류의 두뇌가 시대나 지역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pp.304~307.

이승헌- 우리말의 비밀
'아리랑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우리 노래다.
 만든 사람도, 만들어진 시기도 알려져 있지 않고, 지역에 따라 노랫말도 가락도 저마다 다르다.
 그 가운데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어서 대표격이 된 아리랑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고 하는 곡이다.



노랫말을 보면 사람을 떠나보내는 여인의 원망 어린 슬픔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별을 한탄하는 노래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즐겨 불리며 전해졌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좀 의아하지 않은가?
아리랑이 정말 그런 노래일까?

아리랑은 내가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이다.
혼자 있을 때도 내가 작사작곡한 나만의 아리랑을 부른다. 모임 자리에서 노래 부를 기회가 있으면 물론 아리랑을 부르고, 이는 언제나 합창으로 이어진다.
내가 부르는 아리랑, 내가 알고 있는 아리랑은 기쁨을 노래하는 곡이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인 '참나를 깨닫는 기쁨'을 노래하기에 그 깨달음의 여정에서 겪게 되는 애환도 곡조에 함께 흐른다.
 

이는 아리랑의 어원을 연구하거나 역사 배경을 분석하여 알아낸 것이 아니다.
어느 날 아리랑을 이어서 계속 부르던 중에 문득 이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깨닫게 되었다.
이는 누구에게나 직관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번뜩임 같은 것이다.
나한테는 아주 명징한 느낌이지만 직관으로 파악한 것이니 이를 맞다거나 그르다거나 할 수는 없겠고, 다만 여러분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아리랑의 해석을 내 느낌대로 풀어본다.
 

먼저 아리랑을 한자로 풀어보자.
 

아[我] : 참나
리[理] : 이치, 원리, 법
랑[朗] : 즐거움
 

뜻을 새기면 '참나를 깨닫는 기쁨이여'가 된다.
나는 외국인에게 아리랑을 소개할 때 '참나를 찾는 기쁨의 노래'라고 설명한다.
이 심오한 뜻을 담은 노래 한 곡조로 외국인들은 대한민국을 깨달음의 전통이 있는 나라로 기억하게 된다.
 

다음에는 아리랑을 우리말로 풀어보자.
흥미로운 것은 우리말 속에 숨은 뜻을 찾아내도 한자로 푼 내용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아 : 태양과 같이 밝은 나. 참나.
      또는 '얼'에서 나온 하나의 개체를 뜻하는 '알'이라는 말이 '아리'로 연음된 것일 수도 있다.

리 : 여성을 높여 부르거나, 사람을 지칭한다.
랑 : '라'는 태양. 라에 붙은 이응은 소리를 부드럽게 이어주기 위해 쓰인다.

이렇게 풀어보면 아리랑은 '태양처럼 밝은 이여'라는 뜻이 된다.
이에 따라서 아리랑의 노랫말 전체를 다시 풀어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태양처럼 밝은 이여. 태양처럼 밝은 이여.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참나를 밝히는 힘겨운 길을 가시는 군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 (힘들다고 해서) 참나를 찾는 이 길을 포기하고 가는 이는
십 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 인간 완성(십十은 완성을 뜻함)을 이루지 못하고 삶을 마치고 맙니다.



그러니 힘들어도 참나를 깨닫는 기쁨의 길을 가자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노래가 아리랑이다.
기쁨을 노래하니 기쁜 노래가 될 수 있고, 애환과 염원을 담으니 애조 띤 노래가 될 수도 있다.

'정선아리랑'이나 '밀양아리랑'에서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또는 '아리랑 어절시구 잘 넘어간다'고 노래한다.
왜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달라고 하는지, 왜 잘 넘어가고 싶어 하는지 이제는 그 마음을 헤아리면서 아리랑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의 비밀   p.82~85》
이중재 - 독학의 권유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이어트와 영어 공부는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맞는 말이다.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알고 있지만, 이를 실행하려고 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섣불리 시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당장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멀쩡한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잠을 줄일 것인가?
피로가 누적돼서 결국은 공부와 일, 그 어떤 쪽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좀처럼 공부할 시간을 내기는 쉽지가 않고,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던 사실조차 점점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된다.
공부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사람은 방법을 찾아내고 하기 싫은 사람은 구실을 찾아낸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몸이 마차라면 마음은 이를 끄는 말(馬)이다.
말이 움직이지 않는데 어떻게 마차가 굴러가겠는가.
말이 아프다, 피곤하다, 배가 고프다는 변명을 찾는 시간에 말을 설득하고 달래며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방법과 구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180도 달라진다.
다소 도덕 교과서 같은 이야기지만 이는 결국 성공과 실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좌절과 패배로 얼룩진 과거를 반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변명과 구실을 찾아라.
하지만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나를 꿈꾼다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만 가진다면 시간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현대인들 중에 바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만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시간적 여유가 충분해서 공부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일단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지금보다 현명하게 시간을 쪼개 쓸 필요는 있다.

우선 하루 동안 자신이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파악해보자.
일단 직장생활에 하루 기본 8시간 이상을 쓰고, 삼시 세끼 밥 먹는 데 3시간은 쓴다.
그리고 최소 7시간은 자야 한다.
화장실도 가고 씻고 청소 등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는데 2시간은 걸린다.
그리고 나면 겨우 4시간밖에 남지 않는다.
이나마도 친구를 만난다든지 데이트를 하면 금세 흘러가 버린다.
이렇게 이론적으로 따진다면, 쓸 수 있는 시간은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저 시간들 속에서도 분명 죽은 시간이 있다.
죽은 시간이란 멍하니 보내거나 허투루 쓰고 있다고 판단되는 시간들이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보내야 하는 통근시간,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시간, 업무 중 잠깐 휴식을 취하는 시간 등이 있다.
이 시간을 제대로 활용해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다.

실제로 주변에서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내뱉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무리 많은 시간을 주어도 결코 제시간에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다.
이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발에 꼭 맞게 길들어 있는 구두는 발이 편한 법이다.
하지만 새 구두가 불편하다고 평생 헌 신발만 신고 다닐 수는 없다.
습관도 마찬가지다.
당장 몸과 마음이 편하다고 이를 고집한다면 결코 달라진 자신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부터 당장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자.
정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다른 일과 병행해 보자.
청소를 하는 동안 몸은 움직이고 있지만 귀는 놀고 있으니 영어 테이프를 틀어 놓으면 되고, 밥 먹는 동안, TV를 보는 대신 어제 공부한 내용을 상기시켜 보면 된다.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개개인의 공부방법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실천하는지 여부이다.
짧은 시간이라고 해서 무시할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본다면 반드시 커다란 성과로 돌아올 것이다.
《독학의 권유   p.31~36》



축구 종주국인 잉글랜드 대표 팀의 주장인 프리킥의 마술사 데이비드 베컴.
세계 4대 미드필더로 꼽히는 그는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싱 능력을 지닌 몇 안 되는 축구선수이다.
그러나 화려한 베컴의 외모와 플레이 이면에는 지독한 연습이 자리 잡고 있다.
그가 유소년 클럽에서 맹활약할 당시, 축구클럽 경영자 돈 월트셔가 그에게 리프팅을 시켰을 때, 단 5회도 넘기지 못했다.
그러나 정확히 2개월 뒤 베컴은 월트셔 앞에서 2천 회가 넘는 리프팅을 선보였다.
지독하게 연습에 매달린 결과였다. 훗날 월트셔는 그때를 회상하며 "8살 어린 아이게에 무서움을 느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얼마 전 신문에 유명인 성대모사로 인기몰이 중인 개그맨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성대모사 비결을 꾸준한 연습과 반복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모사하고 싶은 사람의 목소리를 많이 듣는 게 중요해요.
전 mp3 플레이어에 녹음해놓고 그 사람 목소리를 하루 종일 들어요.
대사 하나만 200번 넘게 들은 적도 있어요."라며 반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어떤 생소한 것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 그 이상 그 이하의 방법도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학원을 다니는 것도 노력 아니냐'고 묻곤 한다.
그러나 학원을 다니면 반드시 배운 것에 대해서 정리하는 자신만의 공부시간을 가져야 한다.
학원에서 수업 한 번 듣고 그걸로 공부를 끝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건 남의 것을 빌려온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공부는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인데, 충분한 연구를 통해 자신만의 궁금증을 갖지 않는다면 선생님이 생각하고 이해한 방식 그대로 따라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사실 순탄한 인생을 살지 않았다.
그는 평범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태어났으며, 낭비벽, 못생긴 외모, 우울증, 잔병치레와 병마, 잇따른 낙선 등 인생 자체가 실패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영국 수상이 된 것은 그의 나이 66세 때였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수많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간 사람이었다.
그런 처칠이 1941년 모교에서 했던 연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아무리 큰일이거나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아무리 중요하거나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명예와 현명한 판단에서 아니라면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상대의 힘에 눌려 포기하기 마라.
 상대가 아무리 압도적으로 우세한 힘을 가졌더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우리들 중 누구도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은 없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들도 다들 시간을 쪼개 공부한다.
다만 공부하는 사람들과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의 차이는 의지력에 있다.

내가 하고자 한 목표를 향해 늦더라도 꾸준히 움직이려는 단단한 결심, 그리고 누가 뭐래도 소신 있게 밀고 나갈 실행력만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사람이든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
내가 장담할 수 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승자는 초반에 빠르게 달려나간 토끼가 아니라 목표를 잊지 않고 느리지만 꾸준하게 결승점을 향해 걸었던 거북이였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말자.
《독학의 권유   p.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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